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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의 주: 분열의 십자가에서 평화의 부활로이사야 41:25~42:4, 마가복음 2:1-12
박종천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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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호] 승인 2018.07.18  06: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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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종 천 목사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이사야 40:3-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사막은 어떤 의미일까요? 당대의 Arabah는 바로 남과 북 사이에 있는 비무장지대가 DMZ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여호와의 오심을 위해 길이 예비되고 대로가 평탄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온 중풍병자는 혼자서 걷지 못했기 때문에 네 명의 친구가 그를 들것에 들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이 중풍병자의 이야기를 분단된 한반도에 대비하면 한국 민족의 네 친구는 누구겠습니까? 성경에 나온 네 친구와는 달리 한반도 인근의 이웃 국가들은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취약한 한반도 상황을 놓고 서로의 국익을 좇아가기 바빴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1945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일본의 강제 점령을 채 극복하지 못한 이 땅을 인위적으로 분리시켰습니다. 그후 냉전이 시작되고 남과 북은 1948년 각기 다른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소련과 중국의 군사적, 전략적 지원을 약속 받은 북한이 남침하여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UN과 WCC 모두 전쟁을 발발한 북한을 비난하고 남한을 돕기 위해 UN 군을 6.25 전쟁에 파견했습니다. UN은 그 당시 총선거 UN 감독을 거절한 북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남한 정보만 합법적 정부로 인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아직 전시 중입니다.

이사야 41장 25절부터 42장 4절까지에는 두 유형의 하나님의 종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고레스 왕으로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이사야 선지자가 “목자 또는 기름부음 받은 자”로 지칭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여호와의 종으로 무고하게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사람은 여호와의 종의 종, 제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국의 통치자인 고레스 왕는 여호와의 종들을 구해주는 하나님의 뜻을 본인이 성취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고레스 왕만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16;33 말씀처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만 잡상인들이 이 땅으로 몰려 왔습니다. 고린도전서 4:9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우리 민족의 역사를 시궁창에 비유합니다. 사람들이 이 시궁창으로 인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시궁창을 통해 오만 오물들이 씻겨 나가는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중풍 병자의 네 친구는 입으로만 사랑을 논한 것이 아니라 행동의 누워만 있는 중풍병자를 들어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도 아닌가요? 그들은 무례하게도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갔고 그것도 모자라 지붕을 헤치고 중풍병자를 내립니다. 이 얼마나 신성한 방해인가요.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요. 인자는 죄 사함을 할 수 없는데 말이죠. 이 말로 인해 예수님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용감한 네 명의 친구에 의해 촉발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연쇄 반응을 충분히 볼 수 있게 한 사건이 입니다. 저는 용감한 네 친구의 성스러운 방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죄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용감하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는 전통을 잊은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죄의 고백 후에 오는 축복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낳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고 야보고서 5:16절은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

용기 있게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여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또 우리가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을 용서 할 수 있도록 이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아직 분노로 마음이 풀리지 않은 분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노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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