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요한복음서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독론”, 곧 예수는 누구냐에 대한 말씀이 신학·신앙, 또 예수의 직접 말씀으로 기록된 66권 중 유일성을 지닌 책이다. 요한복음에만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강조이다.

기독론은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탄생한 이후 초기 5백여 년 동안 치열하고 치명적 대결들을 하면서 지구상 유일하게 하나여야 할 기독교가 사분오열 되었고, 유대교와는 만날 수 없고, 태어나지 않아도 될 이슬람을 지구상에 불러내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요한복음 안에는 예수가 누구냐, 하는 “기독론”이 분명하게 기록돼 있는데 초대교회, 사도 후, 또 교부와 감독시대,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에베소·칼케돈 공의회를 계속해서 열었으면서도 “기독론” 일치는커녕 더욱 더 갈등과 분열만 가열되어갔었다.

그런데 궁금증이 하나 있다. 그때, 기독론 시비로 쉴날이 없었던 그 시대에 요한복음은 어디서 무엇은 했을까? 요한복음이 교의학자들이나 감독들에게 필요조건이 되지 못했을까? 다시 말하면 그 시대 요한복음은 어디엔가 숨어 있었을까? 아니면 요한복음을 “교리 분쟁”

 당사자들이 외면했던 것일까?

궁금하다. 그뿐 아니라 필자의 공부로는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 요한복음은 아직도 미공개 복음서 같이 느껴진다. 요한복음이 신자들의 가슴에 정착하면 더 좋은 신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데, 요한복음이 역할하지 못하니(않하니) 기독교는 “중세기”를 떠나지 못하거나 한국교회 같은 수준에서는 “성전시대”, 곧 예수 등장 이전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지난 50여 년 동안 기회만 주어지면 ‘요한복음 강좌’를 수없이 열었는데 신자(목회자 포함)들은 자기가 열고 싶은 곳까지만 가슴을 열었다. 천국 문지기가 베드로 아니고 신자 각자의 “가슴 조절기”에 달려있더라.

복음의 문은 예수께서 여시는 것이지 우리 입맛대로, 각자의 기분대로가 아니다. 마음 문을 열었으면 한다.

요한복음은 “예수 재림기” 직전에 필수인 “네비게이션”과 같다고 할까? 요한복음은 부활하신 이후의 예수 말씀을 해독할 줄 아는(요 16:12~13 참조) 신자들의 복음서이기도 하다.

금주부터, ‘요한복음 시간’을 가지고 싶다. 관심 있는 이들과 탐구하고 또 탐색하는 조심성으로 접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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