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요한복음을 탐구하고 탐색해 보기로 했다. 탐구한다는 것은 학문 발전사적인 동의를 말하고, 탐색이라는 정사학문 외적인 용어를 들이대는 것은 탐구학문이나 정사학풍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류 문명사 속에서 요한복음만큼 문명을 자처하는 무리들에게 타격을 많이 받고 있는 성경은 요한복음이 첫 번째일 것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 철학의 후기 산물인 헬레니즘, 그리고 비잔틴 신학자들로부터 학대를 많이 받았다.

로고스(말씀)라는 어휘 한 단어의 위력이 요한복음을 파상공격 해대는데 그 위력이란 것이 좀 더 접근해서 보면 별 대단할 것 없는 유행 철학도들의 유행가적인 수준들이 대다수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어디서 발원했을까? 마틴 버날의 <블랙 아테나>를 보면 그리스는 고대 이집트의 식민지 과정을 통해서 언어 문명을 획득했는데 그때 주요 역할을 한 나라는 페니키아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 고대기는 히브리 고대기에 앞서지 못한다. 그리스 문명이 아리안 문명의 또한 그것일진대 그들은 스토아 철학, 헬레니즘, 그리고 라틴 기독교의 스콜라 철학과도 한 형제일 뿐이다. 물론 일반 철학으로는 이원론 세계로 손을 뻗치고 있으나 기독교의 틀 속에서는 동로마 기독교에서 비잔틴 신학으로 요한복음을 만난다.

그리스 철학이 바벨론 포로기 이후 형성된 유대교와 그들의 정점인 골고다 현상의 철학화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예수의 요한복음은 포로기 유대교에서 유대 이스라엘 사상의 총아이며 총화인 메시아 예수를 로고스 철학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루돌프 불투만의 <요한복음서 연구>를 읽으면서 철학적 테크닉에 사로잡힌 불투만의 요한복음을 구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레이몬드 E. 브라운의 <요한복음 개론>을 가까이 두고 살필 것이며, 또 스티븐 S. 스몰리의 <요한 신학>, 김득중 교수의 <요한의 신학>, 앨런 컬페퍼의 <요한복음 해부> 등 보편성과 독자성을 확보한 학풍을 주로 참고하여 살펴보겠다.

김득중 교수는 요한복음 연구자들이 대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한 말, “요한복음은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진 초대 주석가들을 보충하여 ‘영적인 복음서’를 쓰려고 한 것이 목적이었다”를 인용한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비교가 공관 예수는 북방 갈릴리 활동이 중심이고, 요한복음은 남방 예루살렘 활동으로 단순화시키기도 쉽지 않다.

요한신학은 일단 간단치가 않다. 공관복음과의 관계나 바울 또는 스데반과 요한의 관계는 복음서의 핵심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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