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42] 사제 왕 요한_ 51

“폐하! 유차홍 아룁니다. 콘스탄티노플 황제와 교황군대인 십자군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나이다. 저들 동・서로마는 서로가 친구나 동족도 아닙니다. 같은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라틴식 교황 기독교와 헬라식 콘스탄티노플 기독교는 서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난 1054년 결별 이후는 그렇습니다.”

 

▲ 카자흐스탄에서 한국 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

보르키는 교황 사절단 명단을 왕에게 보고했다. 다시 정리해 본다. 길 안내를 위하여 요하난과 이수아 카라진 용사, 숙식과 의료 담당은 우장학과 엘리사 방 카라진 용사, 인솔자는 의전과 신변보호를 지휘하기 위해 요한 유차홍 주교와 바르바스 부사령관이다.

사제왕은 흡족해했다. 그러나 신변 보호군을 3명 더 보충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추가했다. 보르키는 왕에게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폐하, 지금은 십자군 전쟁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새로 등장한 교황이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이기는 해도 굉장히 큰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인노켄티우스 3세인데 로마의 최고위 귀족 가문이고 천재적 두뇌를 가진 인물로 학업과정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신앙 좋은데다가 건강하고 교황 정도이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이 너그럽고, 더구나 현재 동・서로마가 지난 1054년 상호 결별 이후 원수관계나 다름없으나 성지 탈환에 동・서로마 황제와 교황이 의기투합되어 있기는 했으나 금번 교황은 동・서로마가 철통같이 단합하여 이슬람 세력을 성지는 물론 주변에서도 멀리 내쫓아버리자는 분위기랍니다. 우리 사절단이 콘스탄티노플까지만 무사히 가면 거기서 교황청 대사관으로 갑니다.”

보르키가 신나게 로마제국 사정을 보고하는 동안 그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있던 요한 왕이 말했다.

“보르키 장군, 낙관이 너무 심한 듯하오. 그들 동・서로마 지배층이 지난 100여 년 동안 십자군 전쟁을 수행해 오면서 그들의 극심한 갈등을 나도 많이 알고 있어요. 새 교황이 등장했다지만 교황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동로마 황제는 교황을 자기 신하로 보고 있고, 교황 또한 황제 위에 교황이 있다는 원칙을 수백 년 동안 고집하는 로마 교황입니다. 저들 교황권과 황제는 아직도 서로 발톱을 감추고 있는 맹수들 관계나 다름없어요.”

“그렇습니까, 폐하. 소장이잘 알지도 못하고 폐하의 마음을 어지럽혔나이다. 용서하소서.”

“아니오. 보르키 사령관의 판단과 소신도 일리가 있고 또 소중한 것이오.”

“네, 폐하! 황송하옵니다.”

“좋소! 그럼 유차홍 주교와 바르바스 장군을 부르시오.”

“네, 폐하.”

요한 유차홍 주교와 바르바스 장군은 요한 왕의 취지를 잘 알고 있다. 왕은 요한 유차홍 주교에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전할 친서를 주고, 바르바스 장군에게는 2명의 수하 병사를 직접 선택하여 사절단의 신변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유차홍 주교님, 주교님의 금번 여행의 중요성을 아시죠. 십자군 전쟁터에서 다급하니까 ‘프레스터 존’을 찾았지 교황청에서 급한 것 아니었잖아요. 그러나 금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사려 깊고 능력 있으며 실력까지 갖추었으니 그는 이미 동방, 곧 아시아의 저력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상대하는 이슬람이 누굽니까? 아라비아의 이슬람 세력이 아니고 셀주크 투르크잖아요. 투르크족이니 아시아 북방족으로서 유럽의 새로운 도전세력입니다. 바로 그 아시아 땅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우리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먼저 찾아가서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데 그들이 환대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나 방심하지 마시고 지혜로운 접근을 하세요. 혹시 동로마에 가시면 콘스탄티노플에 우리의 우군이 있을지도 모르죠.”

“폐하! 유차홍 아룁니다. 콘스탄티노플 황제와 교황군대인 십자군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나이다. 저들 동・서로마는 서로가 친구나 동족도 아닙니다. 같은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라틴식 교황 기독교와 헬라식 콘스탄티노플 기독교는 서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난 1054년 결별 이후는 그렇습니다.”

“허허, 그럼 저들이 어떻게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슬람군과 싸우나요?”

“연합군이 아니라 교황군이 성지 예루살렘을 가려면 콘스탄티노플 보스포로스 해협을 통과합니다. 황제는 십자군이 성지 탈환차 가는 길 경계하고 그 대가를 받습니다.”

“대가라니요?”

유차홍은 1차 십자군 때부터 있었던 일을 대강 말하기로 했다. 제1차 십자군은 동로마의 강력한 황제인 알렉시우스 1세(AD 1081~1118) 이후 이사키우스 2세(AD 1185~1195)가 동생인 알렉시우스 3세(AD 1195~1203) 기간에 이사키우스 2세의 아들인 알렉시우스 앙겔루스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찾아가서 억울하게 황위찬탈당한 부황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다. 그렇게만 해주면 콘스탄티노플 교구를 로마교구 휘하로 복속시키겠다고까지 하면서 현 황제인 그의 숙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십자군은 알렉시우스 1세 때부터 성지 탈환 후 점령지는 어느 쪽에서 차지할 것인가. 또 전리품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의견과 또 합의되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거나 서로 실력행사를 하다가 손실을 보기도 했다. 금번 4차 십자군이 베네치아와 선박제조 비용과 군량미 등 계약이 제대로 이행될지가 문제였다.
십자군은 베네치아와 1차 약속을 어긴 상태에 있는데 전 황제의 아들인 알렉시우스 앙겔루스와 현 황제인 알렉시우스 3세 간의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폐하, 소신이 답변을 올리기가 민망하옵니다. 사실 십자군은 교황군이고 그들은 성지 탈환을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 황제와 엮으려 하지 않았답니다. 그 낌새를 알게 된 알렉시우스 1세는 1차 십자군 때부터 탈환하게 될 성지는 동로마 몫으로 해야 한다, 십자군은 그때 가서 결정하자면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많은 십자군이 떼죽음을 당했던 일이 있었다는군요.”

“그건 백 년 전 이야기입니다. 현재는 이슬람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인지라 서로 간에 협조가 될 것입니다. 걱정 마시고 주교님은 일단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교황청 대사관을 찾아만 가면 절반 이상은 성공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네, 폐하. 명심하여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바르바스 대장과 여러분은 보르키 사령관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대로 하시고, 먼 길이니까 더욱 주교님과 바르바스 대장님의 명을 잘 따르고 무사히 잘 다녀 오기를 기도하겠소.”

“네, 폐하. 명심 또 명심하여 폐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유차홍 주교가 이끄는 교황 알현 사절단은 1203년 여름 박트리아를 떠나 메르브에서 다시 한 번 메르브 교단 본부로부터 콘스탄티노플 사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로마 교황청의 특징은 물론 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었다.

박트리아에서부터 동행하고 있는 델리 출발 콘스탄티노플 행 카라반(사막지방에서 낙타를 타고 무리지어 다니는 장사꾼) 일행과 함께 하는 것이니 그들 대상(隊商)들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큰 불편이 없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사제왕 요한이 보낸 교황 사절단은 두 달 후에 에뎃사에 도착했다. 현재 이슬람 공국인 에뎃사는 800여 년 전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이 아시아 선교를 위해 1차 집결했던 곳이다. AD 451년 그해 네스토리우스 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에베소 공의회에서 정치적인 이단자로 몰려 사막으로 쫓겨난 후 20여 년 동안 사막의 낭인 생활 하다가 세상을 떠났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그해는 제4차 칼케돈 공의회가 열리던 해였다. 그때 공의회 주최측으로부터 당신의 기독론이 20여 년 전 그때와 달리 정통 기독론과 더 가까워졌으니 회의에 탄원서를 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이제 나는 위에 계신 분의 평가(심판)를 받겠다. 인간들의 판단에 울고 웃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성숙해버린 것 같다”고 그의 글에 남겨 놓았다.

유차홍 주교는 일행들에게 에베소 공의회(AD 431년)가 당시 총대주교 신분인 네스토리우스를 어떻게 이단으로 정죄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에뎃사 451년도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때 에뎃사에 집결한 우리 교단은 이 도시를 단숨에 기독교 성지를 만들었답니다. 물론 에뎃사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 다대오(70문도 중 한 사람)가 와서 활동을 시작했으니 오랜 옛이야기죠. 예수님이 세상에서 활동하시던 때니까. 지금은 사통팔달의 도시죠. 지금 우리가 온 길인 델리에서 페르시아까지, 아라비아에서 에뎃사 경유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 또 초원의 북방 몽골 땅에서부터 이곳 에뎃사를 경유하면 콘스탄티노플, 로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아라비아 메카 등 동과 서를 종횡으로 오고가는 여기가 그 에뎃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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