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말씀&칼럼 > 칼럼 요한복음은 죽은 철학의 알몸인가? 요한복음 탐구(탐색)

많은 수의 요한복음 연구자들의 자료를 보면 요한복음서 기록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한복음은 16세기 이전에는 탐구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겠다. 전승사의 측면에서 볼 때, 정경 수립기(AD 150~397) 무렵까지 팔레스타인 지역과 에베소 지역에서는 큰 시비 없이 사랑을 받는 복음서였으나 콘스탄티노플 지경에서는 시비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시비의 징후는 요한복음서와 바울의 편지서, 즉 바울과 요한의 비교가 있어왔었다.

어떤 사람은 요한은 바울의 제자였다. 또 어떤 사람은 요한은 바울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도 요한복음 기록자는 바울에 대해 큰 무게를 두지 않았을 법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쓸 때 그의 신학과 신앙적 한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할 때는 제2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또는 제2차 선교여행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면 AD 50년대 초이다. 바울이 예수의 영을 다마스커스에서 만난 지 20여년밖에 되지 않은 때이다. 겨우 예수와 영적 조우 단 한 번 한 믿음의 경력이고, 그 충격의 시간 이후 20여 년이면 “믿음의 초보자”일 수 있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차 한 잔 마시며 머물렀던 시간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100년쯤 각고의 고심과 자기 신학을 가다듬는 노력을 하지도 않은 사람이 율법사로서의 자기 과거를 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으로도 모자랄 겨우 20년 예수 경험자가 갈라디아서에서와 같은 단정적인 표현(특히 갈 1:9)을 하는 사람을 요한복음 저자가 쉽게 상대해 줄 이유가 없었다.

요한복음 저자는 팔레스타인과 에베소에서 그의 100년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는 엣세네 공동체와 세례자 요한을 배우고 따르던 경험이 있는 듯하고, 예수의 “사랑 받는 자” 호칭(애칭)까지 얻어낸 인물이다. 일단 그는 경망스러운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갈릴리 예수, 예루살렘 예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직접 지켜본 사람이다. 부활하신 무덤 현장을 확인, 오순절 성령강림 경험, 베드로와 영적 쌍둥이처럼 예수를 지킨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께서 감람산(겟세마네)으로 가시기 직전 제자들을 향해,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2,13)이라 하실 때, 아직도 제자들에게 못다 가르치신 말씀이 있구나!

이 대목을 기록한 복음서 기록자 중 유일자는 요한복음 저자인데 그는 이 말씀을 들은 후 70여 년을 고민하다가 요한복음을 쓴 사람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저자는 바울과 일단 거리가 상당히 먼 인물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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