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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콘스탄티노플 점령 >1<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42] 사제 왕 요한_ 53
조효근/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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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호] 승인 2018.08.29  2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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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지위부에서는 성지탈환을 위해서 유럽을 떠나온 지 2년 가까운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군선을 움직여 성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만한 군량미나 전쟁비용도 없었다. 더군다나 보니파체는 무르추풀루스 따위의 정통성 없는 자에게 황제 자리를 맡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 콘스탄티노플이 점령했던 도시 터키, 현재는 이슬람 사원이으로 바뀐 곳에 십자가가 사원 천장에 복원돼 있는 모습.

알렉시우스 4세는 사면초가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십자군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저따위 프랑크 야만인들에게는 동전 한 푼 주는 것도 아깝다고 소리쳤다. 당장 황제 군을 보내서 저들을 황성 주변에서 몰아내라고 소리쳤다. 이처럼 험한 분위기를 베네치아의 단돌로가 고스란히 목도했다. 1204년 3월이면 4차 십자군은 돈을 다 받지 못해도 콘스탄티노플을 떠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알렉시우스4세는 며칠 남은 시간이 아쉬웠다. 섣부른 기회주의였다. 십자군 군자금을 약속했고 그 덕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그는 선택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시민들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 황제로 콘스탄티노플 귀족청년 니콜라우스 카나부스(Nicholas Canabus)를 옹립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친위군이 몰려오자 도망치고 말았다. 기막힌 해프닝이었다. 알렉시우스4세의 부관 두카스 무르추풀루스(Ducas Mourtzouphlus)가 억지황제를 붙잡아 처형했다.

그러는 사이 4차 십자군 최후통첩자로 십자군 참모 보니파체가 알렉시우스4세 앞에 나타났다. 황제가 용서를 빌며 궁궐과 시민들의 사정을 말하면서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 약속이행을 위한 담보로 황궁을 한 곳 내주겠다고까지 했다.

이 내용을 지켜본 황제의 부관 두카스 무르추풀루스가 머리를 굴렸다. 십자군 일부가 황궁으로 밀고 들어오면 끝장이다. 그가 먼저 손을 쓰기로 했다. 그날 밤 무르추풀루스는 뇌물과 정치 수완을 발휘한다. 황실 근위대장 바라크에게 황제 경호를 오늘 밤만 조금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한밤중에 알렉시우스4세 침실로 갔다. 분노한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이 문밖까지 와 있다고 거짓을 말했다. 겁에 질린 황제는 무르추풀루스 품으로 뛰어들어 빨리, 빨리를 소리쳤다. 무르추풀루스는 황제에게 담요를 뒤집어씌워 비밀 계단으로 빼돌렸다.

계단 밑에는 감방이었다. (알렉시우스를 유폐시킨 다음 무르추풀루스는 자신이 콘스탄티노플 새 황제라고 선포했다. 1204년 2월 5일 알렉시우스5세가 등장했다.) 교활한 술책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용감한 군인이고 능력 있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민첩하게 콘스탄티노플 방어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국의 군대가 민첩하게 그의 명령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의 정통성을 의심했던 것이다. 제국군은 숫자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을 이겨내지 못했다. 십자군은 망설이고 인내하면서 동로마의 수도이면서 법적으로는 자기들의 왕국 수도이기도 한 콘스탄티노플을 차마, 뛰어들지 못했으나 쿠데타 황제가 먼저 공격해왔으니 도덕적 부담을 덜어버리고 맹공을 퍼부을 기세였다.

그러는 사이에 무르추풀루스가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평화안을 제시했다. 단들로가 십자군 대표로 무르추풀루스와 만났다. 십자군은 무르추풀루스가 주군을 배반한 악당이라고 불신하고 있음을 전했다. 단들로는 십자군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을 말했다. 즉시 알렉시우스 4세를 석방하고 그에게 십자군과 약속한 돈을 지불케 하라고 요구했다. 무르추풀루스는 거절했다. 그는 회담 결렬 후 황궁으로 돌아와서 알렉시우스4세를 즉시 죽이라고 명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십자군은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과 거래는 없다, 미련도 없다, 윤리적 부담도 없다고 분노했다. 그들은 이제 자기들의 힘으로 알렉시우스4세가 약속한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떠나자는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반반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십자군 지위부에서는 성지탈환을 위해서 유럽을 떠나온 지 2년 가까운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군선을 움직여 성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만한 군량미나 전쟁비용도 없었다. 더군다나 보니파체는 무르추풀루스 따위의 정통성 없는 자에게 황제 자리를 맡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군 지휘부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제4차 십자군의 정신적 지도자들인 주교단과 수도원장들에게 판단을 의뢰했다. 그들 주교와 수도원장들은 밤을 세어 논의하고, 또 기도하면서 검토했다. 무르추풀루스는 황제를 살해한 살인자로서 동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이를 방치한 콘스탄티노플 시민들도 살인 동조자들이고, 그리스 교회가 로마 교황에게 복종하지 않는 행위 역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면서 애석하지만 콘스탄티노플과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또 이 전쟁 또한 성지 탈환전과 같은 교황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제4차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 점령의 명분을 삼았다.

1204년 4월 8일, 공격을 시작했다. 골든혼이 가장 안전한 항구라 했기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베네치아인들은 배의 돛대 꼭대기에 다리를 붙여 병사들이 성벽 너머로 치고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무르추풀루스도 감시탑을 설치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십자군은 성벽 접근이 쉽지 않았다. 때마침 강풍이 불어와서 배들이 떠밀려 내려가기도 했다. 십자군과 콘스탄티노플 부대인원이 그리스 군은 서로가 하나님은 자기편이라고 했다. 평화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도시에 이슬람 원정 차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콘스탄티노플로 달겨들다니, 소경 제 집 닭 잡아먹기도 분수가 있지 어디서 감히 도둑떼 같은 짓인가. 천벌이 두렵지 않으냐고 분개했다.

십자군은 자기들만 절벽에 박치기한 것처럼 피해를 봤다고 투덜대며 일단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십자군은 상당수가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교단과 수도원장들의 결의는 요지부동이었다. 더 후회하고, 또 망신을 당하기 전에 떠나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하나님의 제일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흠집 내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지휘관들도 있었다.

그러나 몬체라토의 보니파체와 엔니코 단돌로는 한 번만 더 공격해보자고 군대를 설득했다. 단돌로는 배를 한 쌍씩 밧줄로 묶었다. 방어벽 주요 지점마다 민첩한 병력을 더 많이 배치했다.

4월 11일, 진군명령에 앞서 사제들은 기도회를 열었다. 사제들은 콘스탄티노플 점령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 병사들을 적(비)기독교인들이라고 몰아붙였다. 황제를 살해한 놈들, 교황의 명령을 거부한 놈들, 유대인들보다 나쁜 자들이라고 아우성치듯이 했다.

이튿날 12일이다. 십자군은 다시 공격했다. 종일 치열한 전투를 했으나 성벽을 뚫지 못했다. 오후 늦게 항구의 방어벽을 몇 군데 장악했으나 동로마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때였다. 아이엥 피에르가 이끄는 부대가 성벽 너머에 빈틈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맹렬한 공격을 했다. 약점을 노출시킨 동로마군들의 저항이 무서웠다. 화살이 비 오듯 날아왔다. 뜨거운 물, 돌멩이, 송진 섞은 펄펄 끓는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간신히 방패로 공격을 막아내면서 위험하고 희생 많은 고비를 넘기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침내 작은 구멍을 내는데 성공했다. 뚫린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수많은 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멈칫거리자 클라리의 알룀(Alleumes of Clari)이라는 무장 사제가 나섰다. 자기가 콘스탄티노플 입성 선두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놀란 십자군 진영은 그를 말렸다.

“걱정 마시오. 적군은 성벽을 이곳만 지키는 것이 아니오. 백 명만 처단하면 길잡이가 될 수 있소.”

그는 소리치면서 붙잡는 동지들을 사정없이 뿌리치고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놀라기는 적군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의 군사가 뛰어든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을까, 그들은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알룀 사제가 뛰어들어 성벽을 등에 지고 달겨드는 자들에게 칼과 창으로 치고 막고를 거듭했다.

그 순간 여기저기가 뚫리고 성문이 열리는 등 콘스탄티노플 수비군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부 콘스탄티노플 군사들은 도망치기도 했다. 어느덧 십자군 숫자가 더 많아질 만큼이었다. 다급해진 무르추풀루스가 군사 몇을 이끌고 달려왔으나 그는 순간 대세가 기울고 있음을 알고 지휘본부로 돌아갔다.

저녁 해가 지고 도시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십자군은 공격을 서두르지 않았다. 공격이 아니라 수비형으로 진을 쳤다. 전군을 최소한의 범위 안에 집결시켰다. 저녁 시간에 시내로 진입했다가 길을 잘못 들기라도 했다가 군중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궁성 부시군보다 이 도시 주민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그들 십자군은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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