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기록자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 그리고 저 사람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산단다 또는 아니다,라는 잘못된 정보가 제자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내 사랑하는 자를 세상에 그대로 둔다 한들 그것이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셨다. 주님의 재설명 말씀에서 요한 기록자는 주요한 힌트를 얻었다.

비로 이거다. 말씀 속으로 숨자. 말씀이 있으면 그 형체(육신이나 건축물) 따위는 한정된 것이니 말씀이 보존되는 것으로 생명체들은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의 상상력은 육신의 한계와 생명의 영원성 간의 차이를 분별해냈다. 예수의 말씀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요 21:22) 하실 때 요한복음 저자는 “자기가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영생할 수 있다,는 비밀을 발견한 것이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영생이다. 말씀, 곧 영생을 지키는 것이 진리이신 주님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 안에서 요한복음 기록자가 오늘도 살아있음을 깨닫는 자들은 깨닫는 것이다. 그날 요한 저자는 영생에 대한, 예수 다시 오실 날까지 살아남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 다시 오실 날 이전에는 다 풀리지 않을 복음서를 보완 기록하기로 작심했을까?

요한복음은 고난도의 비유와 상징, 언어 다루는 기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요한복음 구성요소들을 보면 2장의 내용 한 장으로 갈릴리 활동의 예수와 메시아의 예루살렘 자기 계시의 마감까지를 압축한다.

20장부터 2장까지 거꾸로 읽어도 불편이 없게 편집되어 있다. 가장 높은 난이도는 각 장에 등장하는 예수를 주인공 교체 방법으로 요한이나 베드로로 바꾼다 해도 해석이 되는 기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유대-이스라엘의 전통적 관습과 사유와 헬레니즘의 이원론을 동시 동원해도 요한 기록자의 메시아 예수론은 흔들림이 없다. 일원론이나 이원론은 뒤집어서 해석해도 동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철학적 모험을 해내는 요한복음 저자는 그리스의 3대 철학자는 물론 인도의 싯다르타, 중원의 공노장자가 연합전선을 펴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을 묘수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요한복음과 요한 기록자를 만나보면 그가 주도하는 기독교 양식과 철학이면 이 세상의 어떤 종교나 철학 앞에서도 기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요한복음 21장 25절을 보면서 더욱 자신할 수 있다. 아마, 25절은 요한복음 기록자가 아끼는 그의 제자가 첨가한 언어일 법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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