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량 목회자 부부의 개척 고군분투기-푸른소망교회·산새교회, 정선영·이삼열 목사

남편은 인테리어 기사,
아내는 바리스타로 일하며
일과 목회 병행-말씀과
기도가 목회 승부처

‘퍼주기’ 목회에서
말씀 심기로 전환,
4년째 꾸준히 성경공부하며
신앙의 기본기 든든히 세워

▲ 푸른소망교회·산새교회, 정선영·이삼열 목사


목수와 바리스타. 목사 부부인 이삼열·정선영 목사(42·산새교회, 48·푸른소망교회)가 제2의 사역으로 여기며 정성을 쏟는 일들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들 부부는 자비량목회자들이다. 일하는 목회자들이 그렇듯 때로는 “내가 목사 맞나?”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고된 일터에서도 목사이기에 더욱 최선 다하고 돌아서면 가장 먼저 성도들이 떠오르는, 영락없는 목회자들이다.

인천시 서구 완정로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한 ‘파란우산카페’, 나무마감재를 덧대서 꾸민 내부가 편안하고 아늑하다. 이곳은 정선영 목사의 목회처이자 일터고, 이삼열 목사가 인테리어 전문가로 데뷔한(?) 곳이기도 하다.

부족한 교회 재정을 채우기 위해 목회와 일을 같이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들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재정이나 교회 부흥이 아니라 오로지 “성도들과 함께 온전히 자라가기”이다.
 

●● 좌충우돌 개척기, 이끄심 따라…
 

부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해외 선교를 떠나려다 좌절되고 돌파구처럼 시작한 것이 개척이었다. 먼저 안수 받은 정 목사가 남편이 안수 받기까지 목회지를 지킨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푸른소망교회를 개척하면서 일부러 사람이 찾지 않을 것 같은 곳을 골랐다. 살고 있던 집 전세금 5천만 원을 빼서 아파트단지 후문 쪽, 길에서 쑥 들어간 상가건물 2층, 일부러 외진 곳을 찾았는데 개척하고 6개월 만에 아이들이 30명 가까이 출석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의무감 때문에 전도를 나가면 그때마다 아이들이 불어났다.

주변에서는 ‘돈 들어가는 아이들뿐’이라며 걱정 어린 시선이었지만 매주 예배당에 가득 찬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소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목회지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을 좀 더 풍성하게 먹이고 채워주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일이었다.

처음엔 당시 전도사 신분이던 이 목사가 검암역 인근에 ‘파란우산카페’ 간판으로 커피전문점을 냈다. 커피문화가 확산되기 전이라 인근에 커피전문점은 이곳이 유일했다. 그때 가게 운영을 컨설팅해준 전문가의 조언을 이 목사는 지금까지 자비량목회의 철학으로 간직하고 있다.

“최고의 맛과 서비스로 손님을 섬기고 나중에 목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쩐지 다르더라” 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는 거예요. 크리스천이라 역시 다르다는 말을 듣는 것, 목사든 성도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니 당연히 맛 좋고 친절하니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는 승승장구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을 아낌없이 섬겼다. 사람들이 찾아와 쉼을 얻고 가는 카페를 교회 사역에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목사가 직접 인테리어 해 교회를 카페로 꾸미고 주중엔 카페, 주일에는 예배를 드렸다. 푸른소망교회를 본 이들이 “우리 교회도 카페로 꾸며 달라”며 부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일을 하게 됐다. 검암역의 커피전문점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개척교회들을 보니 사모님이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아내가 목회하니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정 목사도 교회를 돌보면서 주중에는 커피를 내렸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카페에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카페를 통해 장년층 전도가 이어졌다.

이 목사가 안수를 받으려면 3년 간 전임사역을 해야 하지만 장년 10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과 또 이들이 속한 감리교는 부부목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푸른소망교회에서의 사역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 목사의 목회처를 고민하던 어느 날 고등학생 나이의 가출한 아이들 5명이 찾아왔다. 카페에서 남녀가 보기 민망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정 목사가 묘안을 냈다. “카페가 6시에 문을 닫으니 그 후에 와서 같이 밥 먹자”는 제안이었다. 아이들은 집 밥이 그리웠는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목사는 “이 아이들이 나에게 주신 양들”이라는 마음이 커졌다. 아이들과 함께 개척하자.

당시 교회 한편의 3평짜리 쪽방에서 세 식구가 살았는데 집을 얻어 5명의 아이들과 같이 살면서 이 목사도 목회를 시작했다. 적은 돈에 맞추다보니 주변에 인가가 없는 산속의 집을 얻었다. 아침이면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새들도 집이 없는지 우체통에 알을 낳는 것을 보고 교회가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가 되면 좋겠다 싶어 ‘산새교회’라고 이름 지었다.

아이들에게 자기 앞길을 개척해 갈 수 있도록 인테리어 기술을 가르치며 6개월을 함께 살았는데 사고가 났다. 이 목사가 일 나간 사이 아이들이 은행에서 돈을 훔쳐 현행범으로 모두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다. 아이들을 빼내보려 갖은 애를 썼지만 불가능이었다. 자식 같이 여겼던 아이들을 잊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집에서 나와 다시 교회의 쪽방으로 옮기고, 이 목사는 푸른소망교회와 가까운 곳에 새롭게 카페교회를 개척했다. 푸른소망교회는 “예배다운 예배”를 위해 건물 지하에 공간을 꾸며 카페와 분리했다. 양쪽 교회 월세만 4백만원가량, 재정 충당을 위해 일을 쉴 수 없었다.

다른 지역에 지금보다 더 큰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옮기지 못했다. 개척 초기부터 출석한 남매 때문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남매는 이제 중학생이 됐지만 부모는 믿지 않기에 이사가면 이 아이들이 신앙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교회를 옮길 수 없었다.

▲ 아이들과 함께한 나들이, 푸른소망교회와 파란우산카페가 위치한 상가건물, 푸른소망 토요학교 목공반에 참여한 주민들, 이삼열 목사가 직접 인테리어한 파란우산카페(사진 위부터 시계방향).


●● 같이 배우다, 함께 자라다

개척교회의 특징은 항상 문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지만 반대로 빠져나가는 문도 항상 열려있다. 카페에 왔다가 교회 등록까지 하는 이들은 대부분 초신자들, 사랑으로 정성껏 섬겨 2,3년 정착할 만하면 큰 교회에서 “우리 교회 와보라”며 끌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번은 중학교 졸업식에 교회 출석하는 아이들을 위해 꽃다발 32개를 만들어 가져갈 정도였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회에 발을 끊었다. 고등부 예배가 없어 장년예배를 함께 드리다보니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했다. 또 부모들이 비신자인 경우가 많아 교회보다 공부가 우선이었다.

“정성을 쏟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나갔을 때는 목회를 접어야 할까 싶을 만큼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 목회 방침을 바꿨다. 먹을 것, 선물 ‘퍼주기’가 아니라 말씀 ‘심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떠나가는 신자들을 보며 가슴 아픈 것은 신앙의 기본기를 제대로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를 옮겨간 경우 그 교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영영 신앙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말씀이 먼저 제대로 심겨지게 해서 어디 가든 신앙으로 힘있게 설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4년 전부터 수요일 낮 시간에 성경공부를 해오고 있다. 창세기부터 찬찬히 짚어가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원받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다니엘이 여자예요?’ 하던 신자들이 지금은 자신 있게 복음을 설명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신앙생활도 목회자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삶 속에서 부딪치고 고민하고 실패하는 속에서도 신앙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한 번은 권사님 두 분이 교회를 옮기게 됐다. 갑자기 어른들이 빠져나가자 연약한 신자들이 동요하는 듯했다. 주일 예배 시간이 끝나갈 무렵 여 집사 두 명이 얼굴이 벌개져서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회 오다 둘이 만나 교회 상가 1층 호프집에서 ‘회의’를 했단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더 교회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이 얼마나 결연한지, 예배를 인도하던 정 목사는 비록 술 취한 모습으로 하는 말에 황당했지만 그들의 신앙이 자라는 것이 보여 기뻤다.

이들 부부는 “목사도 성도도 하나님 앞에 자녀”라면서 성도들에게도 “목사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함께 자라가자”고 강조한다.

팀목회로 이들 부부 외에 2명의 목회자와 함께하고 있다. 주일 9시와 11시 예배, 1시 큐티 모임은 푸른소망교회에서, 저녁 7시 예배와 토요일 중고등부 모임은 산새교회에서 갖는다.
 

●● 목회, 내려놓는 훈련

개척 9년, 목사 부부가 자비량목회를 해온 지는 7년 됐다. 이들은 일도 사역의 일환이라고 여기며 최선 다하지만 과연 목회를 내 힘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도 고민한다. 일을 하는 목적은 목회를 더욱 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목회와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고된 육체노동인 인테리어 일을 하는 이 목사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픔이라고 했다. 주중에 교회 사역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월, 화, 목요일에 일하는데 일찍 귀가하면 밤 10시, 새벽까지 작업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제는 고된 노동으로 육체가 연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주일 아침 부부가 말씀을 나누며 영적으로 공급 받는 게 힘이 된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말씀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면,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기도로 도울 수 없다면 과연 지금의 삶이 목회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 내어 성경을 펼치고 기도의 시간을 갖지만 육체의 피로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정 목사도 커피를 내리면서 “내가 왜?”라는 수치심 때문에 숨어서 울 때가 많았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퉁퉁 붓고 힘들었다.

“주일 예배에 성도들 앞에 섰는데,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내고 이 자리에 왔겠구나 하는 감격에 눈물이 쏟아졌어요.”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 두 달 전부터는 파란우산카페를 자율카페로 전환했다.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니 오히려 지역민들이 만류하며 자율카페를 제안했다. 손님들이 스스로 돈 내고 차를 만들어 먹고 설거지까지 해놓고 간다. 그렇게 자율에 맡기니 정 목사뿐 아니라 손님들도 편안해했다. 푸른소망 토요학교에서는 목공반, 바리스타, 냅킨아트, 밴드레슨, 과학특강 등 아이와 어른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세미한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동체로

제발, 다시 3평짜리 교회 쪽방만 아니길….

아파트 전세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올수록 눈물 떨구며 “다시 교회로 간다는 말만 하지 말아줘” 하던 중1 딸아이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카페교회 한편의 쪽방은 서로 가까이 부대끼며 재미를 느끼는 정도였는데 이제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옷 갈아입을 공간조차 없는 집은 상처가 되는 듯했다. 지난해 딸아이를 위해 급하게 1년짜리 전세를 얻었는데, 1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이야. 이들은 과연 11월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아이의 바람을 채워줄 수 있을까.

7년간 평균 한 달에 한 곳의 공사를 맡을 만큼 인테리어 실력을 인정받았고, 동네에서 파란우산카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데, 이들의 계산법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의아해하자 이 목사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대접 받는다지만 개척교회는 목회자가 퍼줘야 해요. 넉넉히 퍼주다 보니 늘 마이너스…” 그러고는 뒷머리를 긁적긁적.

이들의 꿈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과 함께 평생 신앙 경주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함께 신앙으로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녹록치 않은 목회현장을 힘껏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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