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택
한국교회독서
문화연구회 대표

조선 제4대 왕 세종은 어려서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결과 눈병과 과로로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 그래서 부왕 태종은 내시에게 세종의 거처에 있는 책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라고 명했다.

그때 내시는 병풍 뒤에 송나라의 명신 구양수와 소동파 간에 오갔던 편지 모음집인 <구소수간>이란 책 한 권이 남아 있는 것을 모르고 물러났다. 세종은 이 책을 몰래 천 번을 넘게 읽었다고 한다.

태종은 어린 세종이 독서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많은 책을 선물하여 읽게 하였다.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역사, 정치, 법, 음악, 과학 등 다양한 책이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주는 책이면 어떤 책이든 밤을 세워가며 읽었다.

세종은 재위하는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연(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모임)에 참여하여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했다. 경연에서의 토론은 자연스러운 독서 문화였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날마다 경연을 열어 독서와 토론을 계속하였다.

세종은 재위 기간 중 유교 경전은 물론 중국의 역대 역사책도 두루 공부하였다. 세종 재위 중 경연을 시행한 횟수는 총 1,898회에 이르렀으며 세종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해서 강연관들이 따라가지 못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세종은 늘 배우고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서 완성되어야 진정한 독서의 마무리가 된다고 여겼기에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 정책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끝없이 연구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구 속에서 창조가 이뤄지는 법이다. 세종은 남다른 학구열과 탐구심으로 소리를 연구하고 자신의 책읽기에 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탐구가 훈민정음 창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세종의 독서법은 자기만족이나 자만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통해서도 배울 점을 찾았다(참고. 조선 왕의 독서법, 박경남 편저/북씽크).

세종은 국가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백성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여겼다. 또한 세종은 집현전 소속의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집에서 독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사가독서제’라 한다. 즉, 인재를 육성하고 문풍을 일으킬 목적으로 양반관료 지식인 가운데 총명하고 젊은 문신들을 뽑아 여가와 국비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는 제도였다. 독서의 중요성을 몸소 깨우친 세종이었기에 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세종은 자신이 책읽기와 학문을 좋아해서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권했다. 이러한 그의 배움의 자세는 자신은 물론 신하들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비단 신하들에게 권고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종은 조선의 왕으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지극히 현실적인 군주로서 그의 책읽기는 인격수양과 함께 정치에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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