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경묵상 잡지에서 진로코너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침 일정도 맞고 해서 인터뷰에 응했다. 청소년들의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에 따라, 어떻게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번역 일은 어떻게 하는지,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번역가는 번역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술술 대답하던 나를 잠시 주춤하게 만든 질문이 등장한 것은 인터뷰 막바지의 일이었다. “번역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순간 아득해졌다. 번역하며 보람을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가? 이 질문이 왜 당황스럽게 다가왔을까. 그러다 보니 순간적으로 스스로가 속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보람도 없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이런 과민반응은 소심한 자의 전형적 자격지심일 뿐. 기자는 나를 향해 늘 보람을 느껴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번역 일에 관심 가질 만한 청소년들을 의식하여, 번역가가 가끔 ‘이 일 참 괜찮네. 의미 있네’라고 느낄 때가 있다면 그때는 언제인가. 이 정도 질문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번역료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도 했다. 번역 과정 자체가 꼼꼼한 독서와 검색, 고민, 글쓰기, 글다듬기가 순환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부가 되고, 번역해서 내는 결과물 자체가 경력이 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하지만 ‘보람’을 말하면서 이 정도 답은 아무래도 미진했다. 하나같이 번역자인 ‘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번역이 나 이외의 다른 이에게, 세상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말할 수 있다면 훨씬 근사할 것이다.

아주 가끔 그런 책을 번역할 때가 있다. 잘 소개된다면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럴 때면 부담과 기대가 교차한다. 보통 번역가는 잘 드러나지 않게 숨어 있고 뒤에 있는 느낌이지만, 그런 책을 번역할 때면 어떤 큰 전선의 전방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이 과연 내가 기대하는 대로 어떤 변화의 촉매제가, 선한 흐름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내 번역서가 혹시 큰일에 쓰인다면, 그것은 내가 그런 큰일을 기대하거나 사명감을 가져서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그 책이 마침 필요한 때와 상황에 맞게 나와 있어서 벌어진 결과일 것이다. 내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잘 준비해서 필요한 자리에 갖다놓을 수는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과가 기대만큼이 아니라도, 아니 아무런 결과가 없어 보인다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번역하며 그런 거창한 보람을 기대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일반적인 감사 인사를 받는 것만도 과분한 일이다. 내가 과연 내가 번역한 책의 적임자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 두려운 마음으로 열심히 번역할 뿐이다.

그래도 인터뷰 이후, 구체적인 보람을 말할 만한 만남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내가 번역한 책 2권의 디자인을 맡았던 북디자이너와의 만남이었다. 그이는 디자인을 위해 받아든 내 번역원고를 읽고 (편집 이전인데도) 완성도 높은 원고 상태를 보며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작업하는 방식, 혹은 완성도 높은 번역원고를 내기 위한 노력, 자세 뭐 이런 것이 같은 업계에서 다른 일을 하는 분에게 좋게 보이고 격려가 되었다는 말에 뿌듯했다. ‘나만 바보같이 사는 것 아닌가 했는데, 여기 그렇게 사는 다른 사람이 있었군요, 반가워요, 우리 계속 그렇게 우직하게 살아봅시다, 힘내세요.’ 그이의 말은 내게 그렇게 들렸던 것 같다. 아무쪼록 내 사는 방식과 결과물이 이처럼 유혹거리가 아니라 격려가 된다면 참 좋겠다.

내가 번역한 C. S. 루이스 저서들로 논문 준비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두 사람의 연락을 같은 날에 받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 유럽이 이슬람의 문명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단시간 내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대규모의 번역작업에 힘입은 바 크다. 적어도 한 사람의 저자에 있어서 내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했다. 결과를 추적할 수는 없겠지만, 그로 인해 또 발생할 여러 결과들과 열매를 생각하면 번역은 씨를 뿌리는 일이라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이 정도면 보람을 말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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