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칼럼 > 주일강단
누가 다스리는가?열왕기하 14:23-29
김태윤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77호] 승인 2018.09.18  14:04: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김 태 윤 목사
세계선교교회 담임

열왕기서에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을 말할 때 왕의 이름, 다스린 기간, 그리고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는지를 말씀하신다. 본문 14~24절은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 십오 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선과 악의 판단기준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내 눈에 좋다, 좋지 않다를 자주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가, 악한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인가?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즉, 혼자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이 민족 전체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모든 죄가 도대체 무엇인가? 여로보암의 모든 죄는 가장 먼저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에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성막건축 지시에 이어지는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다. 이것은 광야에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로보암은 이 금송아지를 두 장소에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였다. 장소를 마음대로 하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사람을 마음대로 정하였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 사람,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죄를 지었다.

왜 여로보암이 이런 죄를 짓게 되었는가? 12:25~26에 보면 ‘스스로 마음속에 이르기 시작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의 부정적인 사고, 내가 예측한 불길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어떻게 할까? 이 걱정 속에서 스스로 마음 속에 세상의 방식을 가져오게 된다. 하나님 묵상하기를 멈추는 그 순간, 세상 방식이 그에게 깊숙이 자리잡게 된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죄 가운데 빠지지 않기를 원하셔서 신명기를 통해 예방책을 주셨다. 신명기의 레슨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의 두려움을 지닌 생각, 나는 하나님이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을 버릴 때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다시 묵상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가도 돌이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이것이다. 여로보암 2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여로보암 1세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는데 여로보암 2세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무려 41년간이나 쿠데타 없이 다스리면서 빛나는 제국을 건설한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전성기를 이루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26~27). 이유는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 보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한 것을 보셨다. 하나님께서 보시면 일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누가 하신 것인가? 왕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후에 앗시리아에 망하는데 이 여로보암 때는 앗시리아도 이스라엘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인생만 주목하고 사람에 대한 입에 발린 칭찬으로만 끝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악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고난 겪는 것을 볼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믿을 때 기다릴 수 있다. 다만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세상적인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 겉보기에 강대국이 되고, 부유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이 어떠한가? 어렵고 힘들 때를 생각하지 않고 썩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여로보암 시절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를 통해 정의를 요구하신다(암 5:21~6:1). 그의 외침은 자명종과 같고 기상나팔과 같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참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고 그분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영적으로는 썩어버린 상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이지 마라, 예배드리지 말라, 내가 괴롭다고 하신다.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정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가? 깨어나야 한다. 먹고 입고, 마시는 문제, 잘 사는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다스려 주시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김태윤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