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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자들의 자립 위해 손을 잡아주세요”복숭아 농장에서 출소자들과 일하며 재범 없도록 사역하는 예수사랑선교회 조용진 목사 부부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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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호] 승인 2018.09.18  16: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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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평 땅에 1,400주 복숭아 농사

출소자들과 함께 주은농장에서 일하며
자립 지원에 힘써

재소자 돕는 사역 20여 년,
뜻있는 한국교회 힘 모아
출소자들의 재범 줄일 수 있도록 도와야

올해 복숭아 농사 풍년
판로가 쉽지 않아 발 동동

   
▲ 당노 높게 결실 맺은 복숭아를 보며 흐뭇해하는 조용진 목사(왼쪽)와 한 형제가 주은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할렐루야! 5년을 전자 발찌 차고 ‘예수님을 주인 삼고 지금 죽어도 족합니다’라고 고백하며 부활을 소망하고 10여 년을 저희와 함께 숙식하며 일하며 신앙생활 했던 사람이 최근 전자발찌를 풀게 됐습니다. 기도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소자 자립을 위해 기도 더욱 부탁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대표 조용진 목사(65)의 아내 박종애 강도사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를 받은 지 보름 만에 그들의 사역지인 경기도 여주를 찾았다.

그들 부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들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고 작은 선물을 제공하며 20년 간 사역하고 있다. 그리고 감옥 안에 머무는 그들을 위한 사역도 중요하지만 출소한 후에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조용진 목사는 재소자들을 위해서 교도소를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출소자들의 자립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다 있(사진 뒷줄 두번째가 박종애 사모).


10여 년 만에 전자 발찌 풀 수 있었던 것은

경기도 여주의 15만 평 땅에 1,400주의 복숭아 농장은 바로 출소자들과 함께 일하는 곳이다. 서두에 적은 감사인사 글은 바로 출소한 후 10여 년 동안 함께 숙식하며 재범을 저지르지 않고 ‘가족’처럼 함께 동고동락한 한 형제 이야기다.

“그 형제가 저희에게 찾아왔을 때 저희 역시도 가게 창고 귀퉁이에 천으로 막아놓고 생활하고 있었어요. 일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하니, 그러겠다고 하는 거예요. 절박한 그의 마음이 보였어요.”

그래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정말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됐다. ‘식구’라는 말처럼 먹는 것도 함께,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눴다. 평일에는 복숭아 농장인 ‘주은농장’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신앙을 돈독히 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날마다 예배드리며,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져나가도록 함께 노력했다.

아마도 그 결실이 ‘10여 년 만에 전자 발찌’를 풀게 된 것이어서, 조용진 목사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기쁜 것이다.

뉴스에서 툭하면 터져 나오는 것이 ‘묻지 마 범죄’다.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두렵고 무서워서 세상 어떻게 살겠느냐’는 걱정들을 한다. 그래서 성범죄자들에게 전자 발찌 채우는 것도 차선책으로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법이 도입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조용진 목사 부부는 말한다.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바빠서 조금 덜한 것 같은데, 지방에는 전자 발찌 찬 사람이 어디 있다는 것이 더 쉽게 노출됩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대하지요. 그리고 연락이 안 되거나 하면 경찰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통해 아, 나쁜 사람이 여기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 지역에 번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정착해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잘못된 일을 저질러 감옥에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나온 사람들, 그들을 우리 사회는 너무 편견 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마음과 눈길이 바로 그들을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때 그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다시 잘 살아보려는 의지 또한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어 버린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들을 껴안고 가는 이들이 바로 조용진 목사 부부다.

“때로는 너무도 지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역을 멈추게 된다면 그들은 누구에게 기댈 수 있겠습니까.”
 

사고로 인한 충격, 타격

지난해 조용진 목사는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 넓은 복숭아 농장에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수 없었고, 사역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복숭아 농사도 많이 어려웠고, 교도소 사역도 버거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 박종애 강도사가 난생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 한국교회였다. 내로라하는 교회들에 노크를 했다. 편지를 써서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일기처럼 아내는 그렇게 수십 통의 편지를 쓰고 또 써서 부쳤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절망이었다. ‘교회 제도와 여러가지 상황으로 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님 안에서 ‘한 공동체’로 여기고 절박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공허한 소리였다. 돌아오는 건 아픔뿐이었다. ‘교도소 선교’는 그들에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었다. 사역하다가 너무 힘겨워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타인’이었지 ‘하나님의 지체’는 아니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저 또 기도하며 열심히 하는 수밖에…. 다행히 교도관으로 평생 일하셨던 2명이 은퇴하고 주은농장에서 함께 일해주고 있고, 출소자 또한 자기 일처럼 일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며 뛰고 달리고 있다.

지금은 몸이 많이 회복되어 조용진 목사는 올해 새 마음으로 사역에 임하며 열심히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400m 고지 위의 땅에서 익은 복숭아 농도는 ‘최고’일 정도로 알아준다.

그런데 판로가 만만치 않다. 대형 마트로 나가긴 하는데, 너무 값을 다운시켜서 나가야 해서 이윤의 폭이 적다. 그래서 ‘출소자 선교 한다는 마음으로 주은농장 복숭아 사주신다면 큰 힘이 된다’며 한국교회와 지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 정성껏 재배한 복숭아 판로를 위해 뜻있는 이들의 주문을 받고 있다(포털사이트에서 주은농장 검색, 010-7773-3475).


뜻있는 분들과의 연합 절실

법무부에서도 ‘조용진 목사’가 한다면 가능하다며 법인을 내라고 하는데, 재정이 안돼서 하지 못하고 있다. 교도소 선교에 뜻있는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 중에 교회의 기도원이나 수양관 등 시설을 사용하도록 해주면 별도의 비용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고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교회에 뜻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다면 ‘법인’을 만들어 안정된 장소,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출소자들에게 새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야심차게 시도해 본 기독교교도소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며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어렵더라도 출소자들이 재범을 저지르지 않고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조용진 목사는 말한다. 이것을 등한히 하고 재범, 또 재범자들의 수용시설 내 생활에만 관심을 둔다면 진정한 교도소 선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진 목사 부분은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사역한다. 주은농장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교도소 내 선교와 함께 출소자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줌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함께 키워나가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 당도 높게 결실을 맺은 복숭아, 출하가 한창이다.


++ 조용진 목사는 누구?

조용진 목사는 흉악범으로 12년 4개월간 형을 살았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로 총 18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생활했다. 한글도 모르던 그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한 교도관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교도관이 찾아와 ‘조용진 형제, 내가 당신 담당인데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정중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 교도관이 갖다 준 성경과 찬송을 발기발기 찢어 그의 얼굴에 던지며 욕을 하고 또 찾아오면 얼굴에 가래침을 뱉기도 했지만 그 교도관은 무릎을 꿇고 ‘먼저 전도하지 못한 제가 죄인’이라며 울며 기도했다. 그것에 충격 받고 한글도 모르던 조용진이 한글을 깨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영접했고, 출소할 수 있었는데 신학공부하기 위해 6년을 더 자진해서 살았다.

출소 후 20년째 조용진 목사는 전국 교도소를 순회·방문하며 복음을 전한다. 수감자들에게 조용진 목사는 ‘아, 나도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소망 그 자체다. 총신대 대학원까지 마치고 2016년 목사안수 받고, 그는 교도소 사역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용진 목사는 나 한 사람이라도 인정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컸다. 그 결실은 이루어져 법무부에서 출간한 책에도 간증수기로 조용진 목사의 이야기가 실렸고, 법무 연수원 7급 공무원들이 전국 교도소에 배치되기 전에 받는 연수교육 강사로 초빙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여주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흉악범 출신에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만큼 인정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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