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운전사의 현장 이야기 (70)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천사가 많습니다.
그러나 천사로 살다가 둥지를 날아가 버리는 천사도 있습니다.
설령 날아갈지라도 둥지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요.”  

 

▲ 이해영 목사
사)샘물장애인
복지회 대표,
샘물교회 담임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역에서 소문난 천사였습니다. 조그만 아파트에서 전신이 마비된 남편을 지극히 돌보면서 집에서 아이들 모집해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딸을 잘 돌보는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열애 끝에 결혼하고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을 때 퇴근길에 남편은 강도를 만나 경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아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남편을 섬겼습니다. 남편이 다치기 전에는 큰 미술학원을 경영했습니다.

그녀는 홍대 미대를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토목분야를 전공해 직장 다니며 부부가 내일의 꿈을 함께 가꾸며 걸어가는 단란한 가정으로 살던 그때 남편이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고 경추를 다친 남편은 그때부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어 침대에 누워 생활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을 돌보는 일이 어찌나 힘든지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 수발을 들어야 하는 그녀는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학원과 집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남편이 더 이상 병원생활 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되어 퇴원했습니다. 오랜 기간 병원비를 지불하느라 돈이 없어 노원구에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넓은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생활고 압박에 작은 집으로 옮겨 생활하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가정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보려고 불편을 감내하며 살기로 했답니다.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남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였습니다. 딸이 아직 어려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강도를 만났기 때문에 보상 받을 길이 없어 모든 것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아이들을 모집해 집에서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아이들을 모집했는데 다행히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내주어 생활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갈 때나 재활운동을 할 때면 제가 동행해 도움을 주기도 했지요.

학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갈 때도 우리 차량으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남편과 딸, 학원생들을 잘 섬기는지 저는 그분을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천사는 현실이 너무 힘들어 아픈 남편을 시댁에 맡기게 됐다며 남편을 시댁에 모셔다 주는 것을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집을 떠나던 날 남편은 아내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눈가의 눈물을 닦았습니다.

친정식구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며 수없이 천사를 설득했는데 그만 지쳤는지 친정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혼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그동안 나를 위해 수고하고 애쓴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시댁에 홀로된 시어머니에게 남편을 데려다 주고 오는 내내 마음이 착잡하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마음과 아픈 남편을 두고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괴로웠겠지요. 그러나 한때 천사로 살았던 그녀가 어디를 가든지 또 다른 천사로 살기를 바래봅니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저도 입장 바꾸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천사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사로 살다가 둥지를 날아가 버리는 천사도 있습니다. 설령 날아갈지라도 둥지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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