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43] 사제 왕 요한_ 57

“서로마 동로마 기독교는 언어와 사상의 간격이 오늘의 파국을 불렀지요. 십자군의 주인인 로마 교황청 기독교가 동로마 기독교 전체를 짓밟아 버렸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각기 이교도 취급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우리들의 구세주의 허리가 부러져버렸어요. 부러진 것이면 고칠 수도 있으나 두 동강 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는 슬퍼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 것을 보았다는 후회뿐입니다.”

 

“네, 머지않아 몽골인 모습을 이곳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몽골 이슬람도 함께 ‘세계제국’을 꿈꾸고 있답니다.”

요하난은 어른들 앞에서 당돌하다싶을 만큼 또렷하게 몽골인 자랑을 했다.

“뭐요. 그들은 초원의 야만인들이잖소? 그들이 감히 세계제국을 입에 담아요?”

유대인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정색했다. 유차홍은 발하람 늙은 수사를 곁눈으로 살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드디어 메시아가 재등장하려나 보구먼!”

발하람 수사는 그의 수염을 매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중얼거렸다.

“뭐요! 메시아요?”

유차홍 주교는 발하람 노인의 메시아 재등장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하람 주교님, 이 유대인 늙은이가 오늘은 주교님으로 부르고 싶군요. 은퇴했어도 하나님 앞에서 주교님 신분이신데 메시아가 다시 오신다고요? 그것도 저 초원 훈족의 땅에서 말입니까?”

“그러지 마소. 노인장은 생각이 그래서 메시아로 이미 오신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입니다.”

“아이고, 왜들 이러십니까? 발하람 수사님, 그건 좀 심한 욕이잖아요.”

“욕은 무슨…, 저 동방 초원이 인류의 문명 발상지인 줄 모르세요. 전에는 훈족이 몰려와서 유럽을 잠에서 깨어나게 했으나 이제는 아예 유럽 기독교를 지상에서 몰아낼지도 모릅니다.”

“듣고 보니 발하람 수사님은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있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유차홍 주교가 유대인 노인의 손을 붙잡은 채 말했다. 유대인 노인의 몸이 떨고 있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은 자기 민족 전체를 향한 욕설로 받아들인 듯했다.

“동방에서 오신 네스토리우스 파 주교님, 금번 십자군인지 도적놈들인지 저들이 이 도시를 짓밟고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을 취했으며, 1천여 년의 동로마 제국 수도를 멸망시키지 않습니까. 이것을 두고 말세라고 합니다. 예수의 제자라고 으스대면서 가슴팍에 십자가 깃발을 붙이고 사는 프랑크 기독교 자식들이 예수님의 최고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능욕했어요. 이러고도 진노를 피할 생각인가요?”

유차홍이 십자군을 욕하는 발하람 노인을 달래고 위로했다. 노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혹시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우려되는 노인이 다시 말하려 할 때,

“발하람 수사님, 제 생각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이곳 동방을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 간의 뿌리 깊은 섭섭함이랄까 양보할 수 없는 각각 양측의 자존심 싸움이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차홍이 질문했다. 발하람 노인이 어느새 감정을 조절하고 웃는다. 마치 어린 아이 같았다. 위아래 이빨 각각 위에 두 개 아래 세 개만 있고, 그것도 아랫니는 금방 빠져버릴 듯이 그가 말할 때마다 흔들거렸다.

“그래, 좋소. 그리고 먼저 미안하오. 이 늙은이를 용서하세요. 어린애처럼 흥분했네요. 유차홍 주교님도 대강은 아실 겁니다. 이들 로마 제국교회는 이 도시의 주인이고 기독교 전체의 은인이기도 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은혜를 배반했어요. 동·서로마로 편을 가르고 교리와 사상, 문화에 이르기까지 서로 갈라져서 싸워요. 이놈들은 세계 종교와 세계 제국의 포부를 가졌던 황제를 배반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는 아시아 땅입니다. 소피아 예배당과 황제의 궁이 있는 곳은 유럽이고요. 도시를 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합친 자리에 세운 거죠. 상징적으로 유럽과 동방아시아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야심이죠. 콘스탄티누스 같은 영웅들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초기 백여 년은 로마 기독교가 통합적인 힘을 발휘했으나 차츰 로마 가톨릭 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는 서로 하나 되기에는 깊은 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 로마와 그리스 간의 사상적 갈등이 드러난 거군요.”

요하난이 발하람의 말을 가로질렀다. 무례가 아니라 발하람이 잠시 쉴 짬을 가지도록 배려했다고나 할까.

“맞았어요. 요하난 사제님, 바로 그겁니다. 십자군은 프랑크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이탈리아나 잉글랜드 등의 연합군이죠. 저들은 서로마인 또는 라틴인들이고 이곳은 동로마 또는 비잔틴 로마라고 하는데 저들 십자군은 라틴어를 사용했고, 이곳은 그리스어(헬라어)를 사용해요. 언어의 뿌리가 다르니까 교리해석이나 생활문화까지 달라요. 교황청 중심의 가톨릭 사람들은 헬라어를 대개는 몰라요. 그러나 동·서로마 기독교의 성경, 교리, 교회 정치와 생활 언어는 모두 헬라어입니다. 저들 십자군을 보낸 교황청과 콘스탄티노플 정부나 총대주교좌(교황좌와 동일 권위) 간의 대화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중간에 통역을 둡니다. 교황청의 지도자들도 헬라어를 모릅니다. 가톨릭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의 어거스틴 감독이 헬라어 한 줄도 몰랐고, 교황 그레고리 1세(AD 590~604 재위)나 샤를마뉴 대제(AD 768~814 재위)도 헬라어를 몰랐어요. 서로마 동로마 기독교는 언어와 사상의 간격이 오늘의 파국을 불렀지요. 여러분, 이제 로마 교황청과 콘스탄티노플 산하 교회들은 금번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사태로 서로의 관계가 끝났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군의 주인인 로마 교황청 기독교가 동로마 기독교 전체를 짓밟아 버렸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각기 이교도 취급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우리들의 구세주의 허리가 부러져버렸어요. 부러진 것이면 고칠 수도 있으나 두 동강 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는 슬퍼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 것을 보았다는 후회뿐입니다.”

발하람 수사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말을 마친다. 앙상한 그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부끄럽다는 뜻으로 얼굴을 가린다. 요하난 사제는 노인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유차홍 주교나 유대인 노인도 침통한 얼굴로 각기 허공을 응시하거나 울고 있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요하난이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발하람 주교님, 정말 저는 오늘 큰 공부를 했나이다. 감사합니다. 명색이 신학을 공부했다는 제가 뒤늦게야 동·서 로마 기독교의 핵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내려 주십시오.”

발하람 수사는 더는 말이 없었다.

다음날 유차홍과 요하난은 짐을 꾸려서 길을 나섰다. 부르사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카라반 사라이(대상들 숙소 및 중간 거래소)가 있다. 콘스탄티노플로 올 때와는 달리 도시가 달라졌다. 여기저기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피난 온 난민들이 있고, 니케아(제1차 세계공의회가 열렸으며, 황제들의 여름 궁전이 있다)와 부르사 중간지점에는 동로마군 사령부가 있었다. 군중들이 하는 말로는 동로마 황궁이 옮겨왔으며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십자군을 중심한 라틴인들을 몰아낼 때까지 임시 수도로 부르사가 정해졌다고 했다.

유차홍 주교와 요하난도 이곳에 좀 더 머물면서 콘스탄티노플 정세는 물론 실종된 바르바스 장군과 그들 일행을 수소문하기로 정했다.

날마다 도시는 소란했다. 카라반들이 전하는 말에는 머지않아 큰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해서 초원지대 수십 개 종족을 통합했다고 했다.

유차홍 주교의 귀에 익은 케레이트 왕국의 옹칸 토그릴 카간이 테무진에게 자기 왕국을 내주고 도망쳤으며, 나이만 왕국도 테무진에게 멸망했다는 것이다. 유차홍이 대상 일행 중 좌장쯤 될 법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초면입니다. 저는 카라 키타이에서 왔습니다. 조금 전에 케레이트 옹칸 토그릴 카간 말씀을 하셨는데 그가 테무진에게 나라를 바쳤습니까? 그들은 부자관계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소. 그러나 그건 옛말이고 테무진이라는 정통파 몽골 영웅이 등장했어요. 그는 뭐라더라… 그의 조부가 몽골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아, 네 카불 칸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러니까 테무진, 그의 부친 예수게이의 할아버지니까 테무진의 증조부가 됩니다.”

“아, 맞소. 거 전설적인 영웅 카불 칸을 빼닮은 자손이 테무진인데 그가 케레이트족, 나이만족, 메르키트족, 올쿠누트족, 타타르족, 옹가리트족, 망구트족, 오로오드족, 고롤라스족, 옹구트족, 바아린씨족, 지르킨족, 투멘 투베겐족, 올론 통가트족, 타르쿠르족, 이키레스족…”

노인은 주머니에서 노트까지 꺼내서 초원지대의 부족국가들을 열거하고 있었다. 카불 칸을 몰랐던 것에서 자극을 받았을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카라 키타이가 테무진에게 쫓기는 나이만 타양 칸에게 국경이 뚫렸다던데….”

카라반 노인은 유차홍과 요하난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네! 그 말씀을 왜 이제야 하십니까?”

요하난 사제가 당돌하게 말했다 카라 키타이에 전쟁이 터졌다는 것이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