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요한복음은 기존의 종교를 온전케 하고, 승화시키시는 예수를 말하고 있다. 공관복음서도 다를 바 없으나 요한복음 기록자는 천재성을 발휘해 “종교 아닌 종교”를 제시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이 성전(This Temple)’은 예수 자신을 말한다. 이 성전, 이 성전마저 헐라, 고 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고, 최소단위의 예루살렘의 머릿돌이신 예수는 그 자신의 존재(형체)마저 헐라, 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일이라도 형체를 가진 채 나타나서 섬기는 자들(종교인들)의 대상이 될 때는 그것(예수 자신의 형체)이 곧 우상이 될 수 있음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가 형체를 가지고, 또 상대적 위치에서 섬김 받는 자가 될 때는 곧바로 그 실체는 우상이 된다. 이데올로기 또는 종교철학으로 전락한다. 예수는 요한복음 2장 19절을 요한복음 6장 26절 이하의 말씀에서 주석(해석·강해)하듯이 말씀하고 있다.

헐어라! 내 살은 너희가 먹어야 할 떡이요, 라고 하심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몸 안에서 나와 함께 살아갈 때(가톨릭교회의 화체설 논리와 다름) 우리는 안에서 하나다! 예수와 내가 하나다, 라는 말이 껄끄러운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성도와 성령의 관계는 성자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오시지만(행 2장 참조) 성자 예수를 믿고 함께하는 성도와 함께하기 위해서도 오셨다. 성령 감화, 또 성령 충만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내 안에 성령 계시고 성령 하나님 안에 성도인 내가 있는 것, 두 존재의 일치요 함께함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활동하실 때 유대 율법을 온전케 하시고 율법주의자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 안에서 예수처럼, 예수님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한 생명체를 이루는 성도들과의 관계를 역사적이고 세속적인 종교의 틀 속에 가둘 수 없다.

성전 안에서 성도, 성전 안에서의 메시아 예수는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의 자리에서 공동체 관계를 이루는 생활종교가 된다.

종교생활이면 종교에 강점이 있어서 종교가 중심이 되지만 생활종교는 생활공동체 안에서 종교행위 이것 때문에 생활 속에서의 종교다.

사울이 스데반을 죽이기 이전의 예루살렘 공동체교회 또는 성도들의 생활과 종교, 가정이나 생활공동체 속에서의 삶의 질서가 예수의 나라 공동체를 이어서 본문 강해로 설명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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