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7대 공의회 역사 배경, 신앙 위기 해결 등 정리

▲ <초기 그리스도교 에큐메니컬 7대 공의회>
레오 도널드 데이비스 지음/
이기영 옮김/대한기독교서회

“초기 일곱 공의회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고도 끊임없는 관심사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배의식에서 이것의 중요성은 동방정교회와 서구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단지 이 일곱 공의회만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한 에큐메니컬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까지 462년 동안 진행된 동·서방 교회의 에큐메니컬 7대 공의회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그 속에서 일어난 신학 논쟁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당시인 313년,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카타콤 시대를 끝내고 ‘신앙=죽음’으로 통했던 박해의 종교에서 자유의 종교 시대가 열렸다. 콘스탄티누스는 324년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에 세우고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했는데, 수도 천도로 인해 동·서방교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7대 공의회는 황제의 소집으로 터키 지역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페소, 칼케돈 등 4개 도시에서 열렸고, 동·서방 교회의 주교들과 지도자들이 참석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수칙에 관해 논의하고 결의문을 작성했다.

서론에서는 교회가 탄생한 정치적이고도 문화적인 개요를 서술하고, 이어지는 각 장에서 7개 공의회를 하나씩 다뤘다. 각 공의회의 역사적 배경과, 의견을 달리함으로 교회 안에서 신앙의 위기를 초래한 여러 신학자의 입장을 서술했으며, 교회가 공의회에 소집된 주교들을 통해 전통적 해석을 다시 검토함으로써 신앙의 위기를 종결지으려 했던 것 등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저자는 “불행히도 당시 교회의 침묵 때문에 공의회의 결정은 자주 더 많은 논쟁으로 귀결되었으며, 계속해서 후속 공의회의 개최가 요구되었다”면서 “부차적인 주제로서 당대 교회가 발전하는 상황 속에서 교황직의 커져가는 권위와, 스스로의 권위에 대한 교황의 이해와 더불어 동방 교회가 가졌던 난제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각 장 끝에 연표를 덧붙여 이해를 돕고 있다.

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5년 니케아에 소집해 예수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삼위일체론을, 431년 에페소 공의회와 451년 칼케돈 공의회, 680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예수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논의한 그리스도론을,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성상화 문제를 다뤘다. 7대 공의회에서는 정통과 이단을 가려내는 논의를 했다.

니케아 공의회 때는 예수가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됐고,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성령의 하나님 되심이 정통으로 확증됐다. 에페소 공의회에서는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공존함이 선언됐고,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혼동, 변화, 분할, 분리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단의론이 정죄됐고,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성화상 숭배가 공식 인정됐다.

세계교회사에서 기독교 신교는 초기 4개 공의회를 지지하고, 동방정교회는 7개 공의회 모두를 인정하며,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포함한 21개 공의회를 인정한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