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도시대 끝 무렵인 AD 180년 경 리옹의 이레니우스(Ireneus)가 영지주의 이단들에 대한 글을 시작했는데 그때 그가 요한복음을 언급하면서 주변의 관심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기독교 초기 신자들은 이 문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1세기 중반,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행 2장, 4장 참조)가 유대교 율법사 사울(후에 바울)에 의하여 유능한 지도자 스데반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주요한 힌트가 있다.

사도행전 6장 스데반을 모함하는 유대인들의 증언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행 6:14) 부분에서 스데반과 예수님의 관계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라는 증언은 예수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와 연결된다. 스데반 설교에서 요한복음 2장 19절 내용이 평소에도 있어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율법사 사울이 스데반을 반드시 죽여야 할 인물로 본 것은 스데반의 사상이다. 예수의 요한복음 2장 19절 내용과 예루살렘 성전의 평가가 어떻다는 것을 스데반도 알고, 아마 사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율법사 사울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도 성전과의 관계가 냉소적이라는 점도 생각했을 것이다. 성전과 율법 전체에 대해서 전문가인 사울인데, 예수께서 제사장 노릇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소 언행에서 제사장 계층이나 바리새인들까지 비판적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성전 신앙을 경멸한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스데반의 증거(요 2:19, 행 6:14) 부분에서 이 사람 스데반은 제거해야 함을 결심했고, 그래서 죽이는 일에 공범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했던 때 사용한 요한복음서와 유사한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 문서가 쿰란 문서들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 안에서 요한복음 사상이 거론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내용의 부분 문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2, 3세기나 18, 19세기 요한복음 학자들이 요한복음 출처 연구를 할 때 세베대의 아들 요한을 외면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요한복음은 초기 예루살렘을 중심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중요하게 취급했을 것이다. 사울이 바울 되어 “이방 기독교” 중심인물이 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 신자들은 서아라비아로 갔다가 그곳에서 일부는 아라비아로, 또 주요 사상성을 가진 이들은 에베소로 갔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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