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다 망한 교회’ 각오, 지역 공동체 회복 힘쓰는 꿈이있는교회 전 남 식 목사

개척 3년차 때, 갈 곳 없는 장애인과 교사들에게
교회 공간 내주면서 시작된 ‘퍼주기 목회’
‘희년정신 구현’을 꿈꾸며 마을 공동체 회복 위해
뛰고 달린 12년, 성도 잃기도 했지만 교회가 할 일 새겨

 

▲ 전남식 목사

목회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얘기를 듣고 있자니 헷갈린다. 밖에서 봐도 이상한데 교인들 중에 왜 불만이 없을까. 목회자의 대책 없는 ‘퍼주기’에 반대하며 교회를 등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강도 만난 자에게 주저 없이 손 내밀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동행하고, 겉옷 달라는 이에게 속옷까지 내어주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묻는 교인들에게 “퍼주다 망한 교회가 될지라도…”. 그 말에 교인들 몇몇이 또 떠났다.

대전 꿈이있는교회 담임 전남식 목사(50)의 ‘희년정신 구현’과 마을 공동체 회복을 지향하는 목회는 12년 간 그렇게 별나게 이어져 왔다.

# 교회 존재 이유를 고민하다

어릴 적 살던 대전시 동구 효동, 그저 이웃 간에 정 많고 따뜻한 곳인 줄만 알았는데, 그 역사를 짚어보니 일제강점기엔 일본이 세운 대형 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주로 살았고, 6.25를 거치면서 피난민들이 자리 잡은 참 가난한 동네였다. 그래도 마을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 동네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는 힘이 되어 주었으며,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등 삶의 전반을 함께했다. 전 목사 가정도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학시절 교회 수련회, 신학교에 가서 안수 받고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목회하며 어린 시절 진 빚을 갚겠다고, 그렇게 지역을 품는 교회의 맥을 잇겠다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신학교를 졸업하니 가난하고 고립된 동네가 싫었다.

그때의 꿈이 다시 생각난 건 영국 유학길에서 비자 문제로 박사과정 중에 갑자기 귀국하게 되면서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공동체와 성령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꾸만 어린 시절 가난한 동네가 떠올랐다. 논문의 핵심은 희년공동체의 회복이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을 ‘성령’이라고 보았다. 희년공동체의 실현, 가난한 마을에서 사회의 승자독식 구조로부터 밀려난 이들과 함께 생명력 있는 공동체를 일궈가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런데 귀국 후 다시 찾은 고향은 이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원주민들은 더 낙후된 지역으로 밀려났고 정겹던 마을 공동체는 깨어지고 붕괴됐다. 아파트는 수년을 살아도 옆집 가족이 몇 명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공동체성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전 목사는 이곳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살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시작부터 교회 구호로 내건 것이 ‘퍼주다 망한 교회’였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살피셨고, 사도행전 1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서로 물질을 공유하며 희년공동체가 회복된 것을 교회의 목표지점으로 삼았다.

“똑같이 밭에 나가 씨를 뿌려도 수확량이 달라지고 구조적인 이유로 불평등이 생깁니다. 악순환으로 땅 팔고 자기 몸까지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 적어도 희년이 되면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교회는 이 땅 가운데서 희년 공동체를 구현해내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개척교회의 현실이야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고 척박한 것은 마찬가지, 그래도 상가건물 100평 정도 공간을 가지고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게 큰 힘이 됐다.

본격적인 퍼주기 목회는 개척 3년쯤 됐을 때부터였다. 지역의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중증장애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다며 일방적으로 내보내자 교사들이 센터를 그만두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봤는데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 교회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아이 5명에 교사 4명, 교사들이 별도로 아르바이트하며 재정을 충당해 아이들 돌보기를 몇 달째, 벼랑 끝에서 손을 내민 것이었다.

▲ 꿈샘도서관에서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


그들이 교회를 찾은 것이 2009년 2월, 주중에 교회의 유휴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아이들을 계속 임시로 돌볼 수 없어 주간보호센터를 신설하려니 규정상 30평 정도 공간 확보가 필요했다. 센터에 교회 공간 일부를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센터 공간을 위해 예배실도 줄여서 리모델링해야 했다. 당연히 반대가 심했지만 전 목사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하셨는데 갈 곳 없는 이들을 내보내는 것은 예수님을 교회에서 내쫓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버텼다. 이 문제는 공동의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대부분이 찬성해 통과됐다. 하지만 이 일로 50여 명 교인 중 다섯 가정이 끝까지 반대하며 교회를 떠났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교사들의 헌신이 입소문을 타 현재 19명으로 늘었고, 8년만인 지난해 재정적으로 탄탄해져서 공간을 마련해 분리해 나갔다.

“그때는 목회적 양심을 지키겠는 객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겁나서 못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전 목사는 “예수 믿고 복 받았다고 간증하는데 실상 들여다보면 은혜도 성령 충만도 개인의 안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본다”면서 오히려 신앙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성경엔 영웅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숱한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성경 내용을 떠받치고 있다. 우리처럼 퍼주다 망한 교회 이야기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교회 구호처럼 망해하고 있다”며 웃었다.

센터가 나가면서 기존 교회 공간을 정리하고 주일만 빌려서 예배드리고 있다. 건물 유지비용을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또 교인들 몇이 떠났다.

# 지역과 함께 걷는 길을 택하다

목회 10년째 되던 해에는 북카페를 시작했다. 영국에서 부러웠던 것이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어서 할머니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봉사하고, 남녀노소 세대를 아울러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것이었다. 마을공동체로서 구심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우선 시작한 게 북카페였다. 교회 문턱을 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빌렸다. 전 목사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직접 커피를 내렸다.

전혀 내색하지 않았는데 주인장이 목사인 것을 알아챈 이들이 책을 주제로 말을 걸어오고 지역공동체 회복의 뜻을 나누면서 1년 만에 마을 도서관을 해보자는 그룹이 결성됐다. 전 목사가 후원위원장을 맡아 CMS를 개설해 5천원, 1만원씩 후원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고, 주민들이 나서서 자치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꿈샘’이란 이름의 도서관은 월 100만 원 가량의 후원금으로 거뜬히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안에 도서관 명의 이전까지 마칠 계획이다.

“도서관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가기를 바랍니다.”

전 목사가 벌인 또 한 가지 일은 지난해 지역의 소식을 나누는 인터넷 언론매체 ‘비알뉴스’(www.brnews.co.kr)를 만든 것이다. ‘B.R’은 ‘bridge’의 줄임말로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단순히 소소한 소식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행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주민들이 정책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즘은, 이 지역에 또다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마을 공동체를 해치는 아파트 건립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 막을 순 없어도 적어도 마을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그것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싶지 않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대변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다시 궁금해진다. 도대체 목회를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교회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걸어가는 작은 공동체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배우고 자연스럽게 지역에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교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전남식 목사는 힘에 부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기본에 충실한 교회로, 목회자로, 성도로 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그 길이 세상에서 망하는 길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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