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의 기득권을 옹호해주던 기존의 가톨릭교회, 그리고 기득권을 그대로 승인해주던 루터파에 대하여 농민들이 크게 실망하여 큰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모진 억압에 반해 토마스 뮨처를 중심으로 저항과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 죽었다.”

박충구 교수(감신대)가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위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1525년경부터 시작된 재세례파에 대한 박해, 서두에서 박 교수가 소개한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 죽었다’는 숫자는 네덜란드에서만 5만 명 정도가 처형됐다고 한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이들로 간주되어 당시 급진적 이단자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박 교수의 발제에 의하면 종교개혁의 주류 세력은 기존의 권력구조를 이용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학적 해석 안에 국가 혹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해야 했단다. 그래서 종교 개혁 이전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체계 가운데 많은 부분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쯔빙글리는 기독교적 국가 개념을 주장하며 무력에 의한 영적 통치까지 주장한 바 있었다고 한다.

“성서적 종교의 회복을 주장했던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성례를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루터의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기독교는 너무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이것을 가지고 고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성서에서는 ‘비폭력’을 말해주고, 끝끝내 몸으로 비폭력의 승리를 몸소 보여주었던 주님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회(성도) 모습 속에는 ‘폭력’적 요소가 존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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