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⑪

요한복음을 기록한 당사자에 대해서는 18세기 말 이후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세베대의 아들이다. 아니다, 전혀 갈릴리 사람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세베대 아들 요한이 당연시 되던 때를 벗어나서 계몽기에 이르러서 저자 이름뿐 아니라 본문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근세사 후기에 이르러서 성실하게 자기 학문을 가꾸어가는 인물들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인물들로 도드(Dodd), 바렛(Barret), 라이트 풋(Light foot)을 1950년대 중간 작품으로 신뢰하고 싶고, 또 1990년 후반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난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이 든든한 신뢰감을 주고 있다. 그밖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요한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 중 상당수는 2천여 년 전 문서에 대해 무엇을 얼마큼 정확성을 기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요한복음 초기 사본에 없었기 때문에 영미국 사본들에서는 요한복음 끝부분, 즉 21장 뒤에 또는 계시록 마지막장 뒤에 부록처럼 붙여두기로 한 요한복음 8장 11절까지의 이약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취급할 때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했으나 그 내용은 없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말이나 글로 딱 잘라서 가려주기가 난삽한 경우의 심경 표현이셨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말이다.

한때, 특히 진보적(자유주의적)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요한복음 저자의 불분명 내용 또한 헬라철학 아류 정도로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지나고, 2천 년대 전후의 학문에서는 조금 여유 있는 표현들을 한다. 기록연대도 앞당기고, 세베대의 아들 요한일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1950년대 후반에 대개를 정리한 견해를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는데 세베대의 아들이 주요부분들을 기록했다. 골격을 만들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학풍이 조성되기 시작한 팔레스타인 요르단 지경, 세베대의 큰아들 야고보 순교 직후인 주후 45년 경 요르단 서안, 다시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멸망(주후 70년) 후에는 소아시아 에베소에 터를 잡았을 때는 세베대의 아들 요한의 초고 후 연구본으로 장로 요한 또는 세베대 아들의 지도 아래서 책임 집필자 세베대의 아들 자신일 수 있다고 정리한다.

요한복음 내용 구성은 이어서 논술하겠으나 집필 내용의 중복성, 편집의 이중성 등의 흔적도 보이지만, 중복성 편집의 흔적 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료의 정직성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뿐 요한복음의 비중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후기 예루살렘 활동기에 등장한 “애제자” 바로 그 사람이 요한복음의 정신적인 주인공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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