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택
한국교회독서
문화연구회 대표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는 철저히 제왕학에 기초하여 손자 정조를 훈육했다. 조선시대 군주들이 학습한 제왕학은 정치의 득실과 인물의 능력, 민생의 고락을 파악하는 현실적인 학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정조는 백일이 되기 전부터 글자에 관심을 보여 부친 사도세자가 직접 글씨본을 써주자 종이가 해질 정도로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영조는 6살인 어린 원손을 불러 <동몽선습>을 외우게 했고, 이듬해 경연자리에는 <소학> 을 외우게 함으로써 학습 진도를 점검했다. 영조는 수시로 정조를 데리고 경연에 참석해 신하들과 토론하도록 했다.

정조는 “지금 내가 인용하는 글은 모두 어릴 적에 읽은 것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선대왕께서 가르치신 공이 아님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정조에게는 영조가 아버지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정조는 왕위에 올랐을 때 여러 방면에서 할아버지인 영조의 정치를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조는 어려서부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는 적이 없었다. 낮에 일이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면 깊은 밤이라도 책을 읽어야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다고 한다.

날마다 독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매일 책을 읽는다는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동안 읽는 양은 비록 많지 않더라도 공부가 쌓여서 의미가 푹 배어들면 일시적으로 많은 책을 읽고 곧바로 중단한 채 잊어버리는 사람과는 그 효과가 천지 차이일 것이다”라고 했는데, 매일매일 일정한 양을 정해두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식 습득에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잡는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조는 정무를 보는 중 여가 시간에도 짬짬이 책을 읽었다. 그는 특히 독서는 언제라도 즐겁지 않을 때가 없지만 “겨울밤 깊고 적막한 때가 특히 더 좋다”라며 매년 겨울마다 많은 책을 통독했다고 한다.
정조는 책벌레답게 한가한 시간이나 바쁜 시간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무를 보는 틈틈이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조는 학문적 수준으로 치자면 영조가 강조했던 스승으로서의 군주가 되어 있었다.

정조의 독서법에서 특징 중 하나가 눈으로만 읽는 책읽기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얼마나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정리하여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책은 붉은 먹으로 표시해가며 100회 이상 통독했다.

정조는 책의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초록의 방법을 택했다. 그는 초록을 넘어 좋은 글귀가 있으면 아예 베껴 써서 벽에 붙여 두고 보면서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 독서의 중요성은 체험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날마다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분량의 책을 암송한다 한들 책의 내용을 직접 겪어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조는 수원 화성이 책의 중심이 되고 책이 넘치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를 꿈꿨다. 당시 규장각을 중심으로 조정에서 발간하는 책은 궁궐과 규장각 서고 등에 배포되었는데, 1794년 이후로 간행된 모든 서적을 화성에도 배포했다. 은퇴 이후 자신이 읽을 책을 미리 비축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었다(참고. 조선 왕의 독서법, 박경남 편저, 북씽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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