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명 애
화가, 예예동산 섬김이

지난여름, 그 혹독한 무더위를 보상해 주기라도 하듯 올 가을 단풍은 숨이 막힐 정도로 찬란하다.

얼마 전 ‘타샤 튜더’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미국 동북부 버몬트 산골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98세까지 살다 떠난 동화 삽화 작가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우연히 그 정원을 발견한 일본인 사진작가가 타샤 튜더가 타계하기 일 년 전에 촬영한 필름이다.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가꾸어온 정원은 아니에요. 정원은 하룻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해요. 하지만 나는 정원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정원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등도 조금 굽은 91세의 타샤 튜더는 맨발로 꽃을 가꾸며, 만면에 장난기 서린 웃음을 잔뜩 담고 이렇게 말했다.

이즈음 서점에서 몇 종류의 책이 한꺼번에 출판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도 그와 비슷하다. 미국의 사랑 받는 화가로 101세로 삶을 마감한 그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그림을 안 그렸으면 닭을 키웠을 거예요. 지금도 닭은 키울 수 있어요.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날 도와주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진 못해요. …그렇게 무력해질 바엔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어요. 오직 팬케이크와 시럽뿐이겠지만요. 간단한 아침식사로요.”

그녀는 소박한 농부의 아내였지만 투르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대통령들이 아끼고 사랑했을 정도로 멋진 화가의 삶을 살았다.

내 어머니, 한국인 ‘박정희 할머니’가 천국으로 떠나신 지도 4년이 되었다. 용모까지도 세 분이 너무 비슷해서 신기할 정도다. 세 할머니 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 본인의 신념대로 자립적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산 것이 똑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년 전, ‘90세 수채화가 박정희 할머니’라는 30분짜리 TV 방송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할머니 그림은 어떤 유파에 속한다고 생각하세요?”

“음. 나대로파?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기쁨에 사로잡혀 그리니까. 나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하늘을 가리키며) 저 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격하며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릴 뿐이에요.”

“아! 할머니. 죄송해요. 이 곳은 국영방송이라 특수 종교적 말씀은 삼가주셨으면 해요.”

그러자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서 “아이, 나는 그만 갈래요. 내가 왜 하고 싶은 말도 못해야 해요?”라고 나오려 하는 바람에 스튜디오가 난리난 적이 있었다. 제작자의 기술로 ‘하나님’ 부분이 완전히 삭제된 채 방영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독교인을 일컬어 ‘세상이 답할 수 없는 자’라고 한다. 우리가 가진 ‘자유’, ‘기쁨’, ‘생명력’을 세상의 언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지난여름의 더위가 혹독했기에 이 가을의 단풍이 더욱 찬란한 것이 아닐까?

‘타샤 튜더’는 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기에 돈을 만들려고 삽화를 그려서 출판사에 보냈고, 그 덕에 어린이 삽화계의 자랑스러운 “칼데콧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100여권의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모지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70세에 그림을 시작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그녀의 100회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정해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로 치하할 정도로 노년을 충실히 보냈고, 1600여 작품을 미국인에게 선물로 남겼다.

일제 치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양 목사 가정으로 시집간 후 23명 대식구와 삼팔선을 넘어 월남했고, 한국 전쟁을 몸으로 견디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면서도 92세까지 세 권의 주옥같은 저서와 1000점 넘는 작품을 남긴 박정희 할머니.

위의 세 할머니의 삶은 마치 올 가을의 찬란하고 빛나는 단풍 숲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낙송의 황금빛이 늦가을을 더욱 아름답고 중후하게 가꾸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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