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운전사의 현장 이야기 (72)

“때는 힘이 있어서 장애인들을 업고 목욕탕 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장애인을 업고 4층 학원에 다니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기차 타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과의 열차 여행은 힘들다기보다 즐겁고 행복했었다.” 

 

▲ 이해영 목사
사)샘물장애인
복지회 대표/
샘물교회 담임

짐을 정리하다 작은 박스에 담겨있는 감사패 하나를 발견했다. 30년 전, 장애인들 72명의 이름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감사패다. 그것을 보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 같이 스친다.

돌 판에 새겨진 이름 중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결혼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도 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여럿 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이분들과 함께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집에만 계시던 분들을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산책하고 같이 목욕탕에도 가고 열차 여행도 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그때는 힘이 있어서 장애인들을 업고 목욕탕 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장애인을 업고 4층 학원에 다니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기차 타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과의 열차 여행은 힘들다기보다 즐겁고 행복했었다.

특히 그때 당시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일들 중에는 부모님 산소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분들을 업고 산소에 가는 일도 큰 보람 중 하나였다. 장애로 인해 가보지 못한 부모님 산소에 20, 30년 만에 찾은 분, 또 어떤 분은 결혼 하고 처음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인사하고 싶다며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는 날은 행복이 두 배였다. 때로는 장애인을 업고 산에 올라가 벌초하고 내려오는 날 다리가 풀려 고생했던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장애인들이 결혼해 신혼여행 길을 동행하며 함께 어려움을 감당한 것도 보람으로 남았다. 벌써 여러 명의 신혼여행 추억을 만들어준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친다. 이 중에는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산후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아이가 어린데 질병으로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 그럴 때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장애인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을 오래 누려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더 이상 현대 의학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질병을 안고 살다가 여행을 가는 날 그렇게 즐거워하던 모습들도 생생하다. 아직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들은 영화를 관람하고 연극을 보면서 행복해하기도 했다.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도 했고 63빌딩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며 환호하던 일도 기억난다. 그때 얼마나 맑고 순수한 웃음으로 서로 기쁨과 행복을 나눴는지….

30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때 흘렸던 땀과 눈물의 자양분이 없었더라면 오늘까지 장애인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찬찬히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보면서 장애인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최선 다하는 것이 주님이 나를 향해 기대하는 삶인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감사패에 새겨진 이름들, 그들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그들은 기억하겠노라 새겼는데 우리 주님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인정해 주리라 믿으며 오늘도 감사 또 감사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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