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이야기를 우리네 현실, 83세 저자의 인생길과 마주보며 풀어내

▲ <시칠리아에서 본 그리스>
강인숙 지음/에피파니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어떻게 꿈에 그리던 시칠리아 여행을 실행에 옮기게 됐는지 설명하는 머리말의 한 대목에서 빵 터졌다.

“문제가 생겼다. 나이를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80세가 넘은 부부가 사는 집에서는 두 달 후에 할 일을 미리 약속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여행 당시 강 관장의 나이는 85세, 국내여행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울 법한데, 지구의 반 바퀴 떨어진 곳으로 여행이라니. 여행 계획이 5월인데 2월에 강 관장의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침을 놓아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어서 남편인 이어령 박사(문학평론가)마저 집필하며 과로한 탓에 탈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

결론은 여행 불가. 함께 여행하기로 한 일행에게도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포기하려는 강 관장을 ‘펄쩍 뛰며’ 재촉한 건 이 박사였다. 자신의 병은 장기전인데 한 달 후 떠날 여행을 취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가장 힘들고 무거운 결정’을 내렸는데, 여행 떠나기 이틀 전부터 고관절 통증이 완화되더니 시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기적처럼 컨디션이 회복돼 마음껏 누비며 여행했다. 그렇게 강 관장은 꿈같은 시칠리아 여행을 마칠 수 있었고,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이야기로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탐색하는 문명 기행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

▲ 강인숙 관장

시칠리아는 찬란한 태양, 맑은 공기, 일 년 내내 춥지 않고, 꽃이 많이 피는 천국의 땅으로 일컬어진다. 책에도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한다. 그러나 강 관장의 여행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학교 때 6.25를 겪었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현대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저자는 시칠리아 이야기를 우리네 현실, 그리고 저자의 인생길과 마주보며 풀어내는 점이 독특하다. 식민지 역사를 지닌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의 역사를 반도 국가와 섬나라라는 지리적 요소를 통해 짚어가고, 그것을 조망하는 데에 남다른 눈길을 보낸다.

“그 유구한 길 위에 서니 사람은 자그마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커플이 지나갔을 뿐, 30분 동안에 그곳에는 우리 셋밖에는 사람이 없었다. 하니발이 코끼리를 물고 알프스를 넘어 쳐들어오고, 반달족이 아프리카 쪽에서 장발을 휘날리며 몰려오고, 고트족이 침입해서 그 큰 제국을 삼켜버리기도 한, 그 험난한 세월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남은 아피아 가도에는, 아직도 예전 모양의 반듯반듯한 큰 돌들이 종묘 마당처럼 편안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브로콜리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우산 소나무들이 의리를 지키며 서 있다.”

책에는 ‘85세의 아마추어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길’ 위에서 떠올려보는 인생길, 그리고 그 모든 길에서 만난 길동무들과의 이야기를 따뜻하고도 느긋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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