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다가 큰 낭패를 보았던 역사의 대목들이 너무 많다. 그중에 하나를 말해보자. AD 393년 데오도시우스 1세가 로마제국 국교화를 선언했다. 세속제국이 국교가 된다는 뜻은 “제국이 교회” 된다는 뜻이다.

로마제국 안에 있는 모든 종교들이 기독교로 간판을 바꿔야 했다. 그때 기독교 안에서 활개치던 아리우스의 단성론 교회가 물을 만난 고기가 되었고, 그 밖의 이단설 유혹에 허덕이던 자들이 콘스탄티누스의 정통 기독교로 간판을 달고 있었으니 당시 교회들은 옥석구분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로마의 미신 종교들까지 모두 기독교로 간판 걸고 행세했다.

이 같은 사태 중에 특히 치명적인 것은 교회의 신자 교육과 조직관리가 허술해진 것이었다. 당시는 민족의 대 이동기간으로 잠시 후인 AD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 로마 멸망도 국교화 서두름과 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동북방에서 중앙아시아 초원의 흉노세력이 중국 한나라에게 쫓기면서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게르만 부족을 도나우 강 너머 서유럽 지경으로 몰아내니 게르만이 갈 곳이 없어 로마로 가서 서로마제국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마지역 라틴 로마인들은 교육과 문화시설이 파괴되고 주거, 경제 환경까지 뒤죽박죽이었다.

사회가 그토록 불안정했으니 당시 콘스탄티누스 직계의 동(신)로마를 제외한 지역은 문맹이 절재다수를 이루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헬라어가 기본언어였는데 많은 사제와 주교들, 심지어 암브로시우스 밀라노 감독이나 힙포의 어거스틴 또한 헬라어를 한 줄도 읽지 못했었다.

제국이 이토록 경제, 문화, 교육, 사회가 혼란하게 된 때에 교회가 책임 있는 활동이 어려웠다. 이 같은 때에 국교화를 서둘러서 교회가 제국에 모범을 보이고 가르칠 기회를 박탈해버린 데오도시우스의 무지와 경거망동이 절대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 책임의 결과는 로마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 예루살렘 교구, 안디옥 교구, 콘스탄티노플 교구들 간의 불안정과 불협화음까지 불렀고, 에베소공의회(AD 431년), 칼케돈공의회(AD 451년)까지 서둘다가 기독론이 두 조각나버렸다. 그 결과는 백여 년 뒤에 지중해 권의 로마 기독교 영토 절반을 아라비아의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겼다. 그때 세계기독교 5대 교구 중 알렉산드리아 교구, 안디옥 교구, 예루살렘교구 등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대’ 모두를 이슬람에 빼앗겼다.

한 번 판단착오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특히 기독교의 세계화를 천년, 또는 2천년 뒤지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우리 기독교는 카타콤 시대 3백년 신앙으로 로마 제국을 얻을 수 있었던 축복에 취해 방심하고, 시건방 떨다가 하나님의 세계사 구원에까지 차질을 빚고 말았다.

또 하나, 한반도에 1885년 뛰어든 프로테스탄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공산당 세력마저 무릎 꿇리고 그들 입에서 “예수 고백”이 나오고 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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