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조 년
한남대 명예교수

가: 종교계에서 나서야 하는데, 종교인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나(종교인): 종교계에요?! 절대 안 됩니다. 기대할 게 없어요.

가: 그래도 좋은 목사님이나 신부님들 그리고 스님들이 계시는데요!

나(종교인): 개별 종교인들 중에는 좋은 분들도 있겠지만, 종교계(종단, 교단)로는 안 됩니다. 기대 안 하는 게 좋아요.

가: 그래도 종교계에서 나서야 하는데….

이것은 종교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의 모순된 시각이다. 상당히 많은 비종교인들은 사회가 어렵거나 풀어야 할 문제가 심각할 때는 언제나 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에 반하여 종교계의 현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손을 썰썰 흔들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다.

작년 9, 10월경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특히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굉장히 심각한 갈등이 고조될 때다. 핵무기를 가운데에 놓고 일촉즉발의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위기가 매일 다르게 전개되고 있을 때다. 그때 일군의 나이 든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보고 넘어가도 좋을 것인가 하는 것과, 이러한 때 늙은이들이 할 일이 혹시 없을까 하는 궁리들을 아주 심각하게 했다. 나도 그 중 하나로 참석했다. 그들은 나이가 먹은 것은 곧 이러한 갈등상황을 만들어오는데 크든 작든 어떤 작용을 함께 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사죄하는 맘으로, 적어도 우리들 뒤에 오는 세대에게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넘겨주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에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논의했다. 그것은 60세를 넘긴 노인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순례의 길을 걷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순례’가 그것이다.

그런데 연초부터 상황은 아주 급하게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전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드러운 듯 강력하게 한반도에서는 우리의 동의 없이 어떤 전쟁도 불가능하다는 발언,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새로운 문을 열어젖히는 신호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말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모두가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인데, 어떤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뒤 남북의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났고, 북미정상이 만났다. 특히 남북을 갈라놓는 비무장지대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들자면서 초소들을 철거하고, 지뢰를 제거하며, 소통의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찾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진전이다. 아직도 의심하며 불안한 맘을 가지는 이들이 꽤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 맘에는 ‘이제는 전쟁은 없을 것 같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지는 듯도 하다. 그런데 정치계에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종교계에서 나서서 평화의 분위기를 올려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분위기가 급하게 따뜻해지는데 순례가 더 이상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평화는 일시현상이나 어떤 사건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속되어야 한다는 것과 정치 군사의 갈등이 아닌 다른 평화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 은빛순례는 시작되고 계속되었다. 남북문제는 정치문제로 일단 풀도록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남남갈등의 문제는 누가 푸느냐는 것이다. 순례에 참여한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 어찌 이리 갈등의 골이 깊고 길고 굳고 넓을까? 일제 때를 지나면서, 좌우익 갈등과 6.25를 지나면서, 그 뒤 계속되는 독재체제를 지나면서, 최근에 일어났던 강정마을과 성주와 같은 일에 이르기까지 쌓이고 얽힌 원한관계들이 왜 그리 차갑고 아프고 싸늘한지! 그런 아픔과 갈등과 긴장이 없는 마을이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오래 가다 보니 어느 누가 가해자고 어느 누가 피해자인지가 불분명하리만큼 또 얽힌다. 이때 맘은 하나다. ‘이러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 것이다.

이 원한을 풀어야 한다. 종교계가 못하겠다면 상생, 용서, 화해, 사랑을 앞에 두고 양심이 살아 있는 개별종교인들이 뭉쳐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종교계도 살고, 우리 사회도 살 것 같다. 적어도 전쟁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데 온 맘을 다할 것이고, 풀어야 할 원한을 삭이는데, 네 종교 내 종교를 떠나서 함께 하는 공동운동이 일어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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