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
홍성사 편집팀

오랜만에 도쿄에 다녀오면서 이색적인 곳에서 묵었다. 도미토리형 숙소인 ‘북 앤 베드(Book&Bed)’ 신주쿠점.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환락가 가부키초(歌舞伎町)―언젠가 함께 간 친구는 이 일대를 ‘소돔과 고모라’라며 씁쓸해했다―한쪽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부터가 의외였다. 첨단 시설을 갖춘 게임장과 각종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9층 건물의 8층. 안으로 들어서니 홈페이지에서 보던 대로 목조 구조물로 된, 몸을 뉠 공간과 사이사이에 진열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배정받은 곳은 입구에서 가까운 ‘북셸프(bookshelf)’ 2층 칸. 말 그대로 서가(書架)가 있는 구조물의 일부다. 캐리어를 놓고서 사다리로 서너 걸음 올라가는 것도 처음에는 어색했다. 서가가 없는 ‘벙크(bunk)’도 비슷한 구조지만 좀 밋밋하고 삭막해 보인다.

자는 것만으로 보자면 이와 유사한 구조의 저렴한 숙소인 이른바 ‘캡슐호텔’이 일본에는 도처에 있다. 숙박비도 비즈니스호텔에 비해 훨씬 저렴하지만 나는 이런 곳에 묵기를 꺼렸다. 오래전 도쿄의 한 캡슐호텔에 묵으려고 들어갔을 때, 내부 구조와 분위기가 시체 안치실을 떠올리기에 질겁하고는 양해를 구하고 환불받아 나온 기억이 내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 둘러싸여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을 듯했다.

오랫동안 각인된 캡슐호텔의 으스스한 이미지와 달리 내부는 그런 대로 괜찮았고, 지내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창가에 잇대어 있는 의자나 홀 가운데 있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밤늦도록 독서삼매경에 빠진 이들의 모습이 우선 왠지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널찍한 계단 모양으로 된 곳에도 책들이 비치되어 있고 군데군데 앉아서 책을 읽는 이들이 있는데, 소규모 독서모임이나 작은 음악회가 열릴 만한 공간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쉽게도) 그런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 비치된 책들을 살펴본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세인들의 관심과 취향이 반영된 책들이 대체로 눈에 띈다. 여행지, 맛집, 요리, 건강, 패션 등에 관한 잡지와 단행본, 사진집들과,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 및 에세이, 만화가 많다. 읽기에 다소 묵직한 책은? 꼼꼼히 살피지 않아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닥 보이지 않는다.

문득 한쪽 서가에서 시선이 멈춘다. 신주쿠에 관한 책들로 가득하다. 도쿄의 가장 대표적인 부도심(副都心)으로 자리매김해 온 신주쿠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책들을 비롯하여, 신주쿠의 이모저모 혹은 신주쿠에 깃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단면들을 엮은 책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뒤적였다. ‘이런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이 감탄을 자아낸다(가까이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신주쿠 관련 책들이 있다!).

이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 대형교회의 도쿄 성전도 있는데, 신주쿠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거주지와 직장과 교회가 위치한 마포구도 참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고 다양한 책들이 만들어질 만한 곳인데… 하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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