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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냐, 왕이냐? ①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사제 왕 요한_ 63
조효근 / 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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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호] 승인 2018.12.19  14: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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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야율 아율, 카라 키타이 4대 카간(왕)인 “사제 왕 요한”은 더 이상 설득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태제 야율 성소에게 카간의 자리를 물려주고 궁성을 탈출했다. 탈출이라는 어휘가 정확하지 않으나 그는 호레즘으로 갔다.

호레즘을 지키고 싶다. 호레즘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후에 분리되지만 당시 사통팔달의 지역으로 불교, 이슬람, 기독교 측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출발한 동로마 또는 동방정교회와 또 중앙아시아에 선교의 중심지를 두고 있는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의 아시아 본부인 메르브, 헤라트, 박트리아 등지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요충지와 이어지는 곳이다.

사제 왕 요한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부터 공들인 카라진 용사 3천 명을 이끌고 호레즘 지역으로 갔다. 장차 징기스칸과 만나서 담판 지을 곳도 호레즘이다. 부하라, 히바, 우르겐치에 카라진을 각각 분산시키고 그는 30명 정예와 함께 움직였다. 아침 이른 시간에 3시간 정도를 기마술, 검술, 총검술 등의 훈련을 시킨다. 30명은 10명씩 10인대로 분류해 대장 1명 대원 9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30명 정예는 정예 중 정예로서 3천명 속에서 30명 속에 드는 건장하고 잽싼 인물들이고, 전술전략 등의 병법 측면만 아니라 신앙과 신학적 기본과 자질을 가져야 했다.

요한 왕은 왕이기 이전에 모두가 사제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과제는 기독교 신자 모두가 사제(목사)의 권위와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제 왕 요한은 40대의 나이에 왕좌를 버린 사람이다. 그것도 한때는 모함으로 황태자 자리를 자기에게서 탈취하려 했던 야율 직고의 아들 야율 성소를 태제의 위치에 세웠고, 또 그에게 왕위를 넘긴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현재는 백의종군이다. 징기스칸이라는 초원 아시아의 영웅이 등장했으니 그와 겨루어야 한다. 둘 중에 하나가 죽거나 둘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결단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빠르면 한두 달, 길면 일이년 안에 그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어 있다.

사제 왕 요한은 부하라 유대인 군장(행정과 군사책임자)인 샴마이 랍반(랍비 7명 중 대표랍비)을 만나러 갔다. 이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BC 586년) 이전 요시아 왕의 개혁시대(BC 604)부터 페르시아 쪽으로 이동한 유대인들이다. 앗수르 제국이 북왕조를 점령할 때 남왕조 지역과 중앙아시아로 집단 이주한 이스라엘인들이다. 갈릴리나 나사렛 지역 출신 이스라엘들이다. 이들 중에는 레바논이나 시리아 쪽 가까운 지역 사람들도 섞여있었다.

랍반 샴마이는 하얀 머리칼을 밀어버리고 수염만 기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밝지가 않았다.

“왕이시여, 어찌 저희를 찾아오셨나요?”

“네, 뒷방으로 물러나니 할일도 줄었고 샴마이 랍반께 예수 이야기 좀 하려고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오랜 벗들이었다. 나이는 더 많은 샴마이 랍반이지만 친구처럼 허물이 없다.

“뒷방이라니요?”

“네, 태제에게 양위했소이다.”

“뭐, 양위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지금 아시아 초원에서 영웅이 탄생했어요. 북방의 4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카라 키타이를 굴복시키러 옵니다. 내가 그를 죽일 수는 없기에 물러서야 했어요.”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네, 내가 왕 노릇 할 때 내 나라를 짓밟는 자를 용납할 수는 없지요. 더구나 잘하면 내가 그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왕관은 내려놓고, 지금 샴마이 랍반께 어떻게 하면 징기스칸을 가르칠 수 있을까를 배우러 왔어요.”

“난, 또… 아무튼 잘 오셨소이다. 마침 적적하던 참이었소.”

“그런가요.”

샴마이는 사제 왕 요한이 말하는 징기스칸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들어 알고 있다.

“징기스칸이 군사 지도자이면서도 마치 다윗 왕처럼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는 마치 초원에 나타난 메시아처럼 탁월한 인물이랍니다.”

“그래도…, 감히 그를 메시아에 비교하십니까.”

“섭섭하셨나요. 랍반의 유대교는 예수 공부가 조금 부족한가…, 제가 어른께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럽지만 깨달으면 부처(붓다)라고 불교신자들은 입에 달고 살아가더군요. 랍반께서도 더러 들으셨겠어요. 랍반 어른의 유대교는 좋긴 하지만 아쉬워요. 왜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나요. 예수께서는 내가 다시 와야 하겠다 하신 말씀을 하셨어요. 제 생각에는 샴마이 랍반의 유대교를 가르치려고 메시아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겠다는 뜻 같거든요.”

샴마이는 넉살 좋게 웃어넘긴다. 처음 만났을 때 같은 근심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고맙소이다. 우리들 유대인들을 위해서 메시아는 반드시 오십니다. 첫 번째 오셨을 때는 저희가 미처 준비가 없었지요.”

“아, 그렇게 알고 계시는군요. 미처 준비가 없었다면 지금 저를 보시면서는 어떤가요?”

“글쎄올시다.”

“아쉽군요. 저는 사제요 또 왕입니다. 카라 키타이 왕은 물러났으니까 아니지만 사제요 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왕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왕입니다. 유대 땅에 예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다시 오시지 않을 겁니다. 그 메시아는 지금 우리들 가운데 계시거든요.”

“아니, 왕이시여!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그럼 요한 왕이신 당신이 메시아라는 뜻인가요?”

“아니오. 오해하지 마세요. 나는 요한이고 사제이며, 영원한 왕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게 있어서 메시아는 늘 함께하십니다. 내가 카라 키타이 왕좌를 버릴 수 있는 것도 메시아와 함께하는 왕 같은 사제가 영원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샴마이 랍반 또한 왕 같은 사제권을 가졌으며 유대 이스라엘의 선생인 랍비요 또 랍비의 우두머리인 랍반이시잖습니까.”

샴마이는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요한 왕의 발언에서 오히려 그의 불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왕이시며 사제이신 어른이여, 제게는 왕의 어딘지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듯한 느낌이 있소이다. 혹시 마음에 걱정되는 바가 없으신지요?”

“샴마이 랍반께서 잘 보셨습니다. 제겐들 걱정이 없겠나이까.”

“무슨 걱정이십니까, 이 사람이 도움을 드릴 수는 없을까요?”

“사실은 저와 저희 민족의 운명을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아, 네. 징기스칸을 왕께서 너무 믿으시는 것 같은 느낌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나 제가 그의 길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럴 경우는 우리 둘 중 하나가 죽겠지요. 그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보충하거나 지혜를 모은다면 세계사의 앞날에 도움을 준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글쎄올시다.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그가 나의 요구를 절반만 받아준다면 제가 저 사람을 모실 수 있지요.”

“절반을 받아주다니요?”

“저 사람 징기스칸 집안이 기독교 신자로 가득하다는 정보는 믿을 수 있으나 저 사람이 신자라는 증거는 없어요. 그래서 저 사람이 내 예수를 배우고 따르려 한다면 그를 제가 모시고 따를 수 있습니다.”
“아, 땅을 징기스칸에게 주고 하늘은 사제 왕이 가지시겠다는 거로군요. 거 흥미롭군요. 피를 흘리지 않고 동업이 가능하군요.”

“뭐, 동업이라고요?”

사제 왕 요한은 랍반 샴마이의 동업이라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기분이 좋았다.

“랍반 어른! 어르신은 잠시 후에 밀려올 징기스칸의 행위를 어찌 보십니까?”

“어찌 보다니요. 우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이상, 떠밀면 밀리고 바람이 몰아치면 그것대로 견디며 사는 것일 뿐 선택이 없습니다.”

“거 슬픈 말씀 하지 마세요. 누가 누구를 쫓아냅니까? 저 같은 견해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남남이 아닙니다. 육신의 삶으로 볼 때는 유대인과 유대인 예수는 같은 민족이고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신령한 의미는 각기 다르지만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유대인처럼 신앙생활 하는 이들 참 많아요.”

“그럴까요. 어떤 면으로 볼 때인가요?”

“예수 메시아를 믿고 그가 보내신 성령과 함께하는 이들은 이미 예수를 대신하고, 또 예수와 함께 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정하는 것과 같지요.”

“왜 그럴까요?”

“유대인은 비록 미완의 모습이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생활 속에서 예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 구약의 영웅들 속에는 예수 메시아가 99퍼센트 정도의 순도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어디서 그런 억지가 나옵니까? 나 같은 유대인을 억지 기독교인 만드시려드는군요.”

“억지가 아닙니다. 기독교 사람들이 예수 모습 반쯤만 닮았어도 여러분이 지금처럼 살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이 제가 지금 살아있는 이유거든요.”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군요. 그럼, 앞으로 저를 기독교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요?”

“그건 아니죠. 우리는 이미 하나님 품에서 한 형제입니다. 서로가 억지로 개종시키려 담비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기독교와 유대교는 다를 바 없어요. 야곱이 ‘이스라엘’ 맞죠.”

“그럼요.”

“그래서 말인데요. ‘이스라엘’과 ‘메시아’는 사실상 동의어라 할 수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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