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⑮

요한복음 기록자는 이 복음서를 매우 난해한 방법으로 썼다. 바울의 글이 논문 형식일 때 요한복음은 산문 형식의 근세사 이후 형성된 현대 소설 형식에도 뒤지지 않을 제반의 조건들을 구사하고 있다.
또 그 필요의 시대성으로 볼 때, 예수의 재림이 무르익을 때쯤 그 내용의 핵심이 공개될 법한 복음서로 아직도 인류 앞에 요한복음서는 미공개형이다.

기독교 사람들, 그 누구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비의’를 가늠해 볼 용기나 객기마저도 없어 보이는 참으로 외로운 처지의 복음서이다. 그 힌트 하나만 소개한다면 그 내용에 접근하려들면 요한복음서는 그 당사자의 모든 것을 박탈하려 든다. 호호탕탕으로도 안 되고, 무위자연의 경지로도 가당치 않다고 벼른다. 그러니 포기할 수밖에. 심지어 이름 석 자마저 내려놓으라 하니 누가 가까이하려 들겠는가.

불트만 스타일 등, 중간자에 머물려고 애쓰던 레이몬드 브라운, 한국교회 신사적인 요한 연구자들까지 존경하고, 18세기 말 이후 계몽철학자들의 공헌도 인정하면서 복음서의 진심을 헤아려본다.

요한 저자는 헬레니즘과 유대-이스라엘 사상의 심저까지를 마치 현장체험 하는 듯, 탁월한 안목이 열려있는 인물, 인물들의 복합적 실력의 발현이라고 하면 어떨까.

고오타마 붓다 집, 자식들이 처음 1백여 년 어간에 이른바 ‘소승불’을 형성했으나 BC 3세기 초 용수보살 중심으로 ‘대승불’ 사상을 이뤘다. 그때 그들은 소승과 대승을 각기 말하면서도 한 문중(절) 안에서 공동기거하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동이 서에서 멀리 있는 것만큼 큰 간격이 있는 철학적 거리인데도 양측은 관용적 자세로 진리수업의 모범을 보였다.

요한복음을 낸 에베소 그룹은 개인이요 집단이다. 그래서 공동이면서 개인을 말하는 기묘함을 가지고 있다. 이를 영문법에서의 ‘군집명사’의 품격으로 보는 듯하다. 분명 복수형인데 단수 취급하는 이중성 말이다.

요한복음의 복합성을 분명히 밝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브라함 전반기의 메소포타미아 사상, 후반기 이집트 사상, 그리고 이 두 사상의 행복한 조합인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함께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인더스 문명까지를 뒤섞으며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재생산한 헬레니즘까지를 포함한 플라톤, 네오 플라톤까지를 거친 헬라 사상을 괄목상대 할 수 있는 실력과 너그러움을 가져야 한다. 또 이스라엘과 유대사상, 특히 유월절 양들, 속죄를 준엄하게 본 ‘아사셀 양’ 사상에 깊숙한 애정을 가진 자들 중에서 태어난 요한복음 저자만큼의 연민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한량없는 사랑, 아흔아홉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하나를 찾기 위해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자, 그 하나가 마치 메시아 당사자인 양, 또 그 하나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우리 밖을 자꾸만 찾아다니다가 눈에서 진물이 난, 그리고 해골바위 산 덫에 걸려 죽게 되는 자의 심정을 터득한 자가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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