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형은 목사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남북나눔 이사장

주류냐 비주류냐, 이 주제는 인간 사회의 오랜 논점 중 하나다. 아니, 현실적으로 보면 핵심 논점이 아닐까 싶다. 주류, 비주류는 무엇인가? 현실적인 데서 시작하여 명분을 살피는 당위론까지 심도를 깊게 해가며 몇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가장 현실적으로 보면 현재 주도적인 힘을 쥐고 있는 집단이 주류고 그 반대편이 비주류다. 통속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이다. 편하고 단순한 개념이다. 그러나 주류 비주류를 이런 식으로만 파악하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바람직한 관점에서는, ‘합리적이고 원만한 리더십’을 가진 집단이 주류고 그 대척점에 비주류가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나 문제점을 들춰내는 데 능숙한 것이 비주류의 집단 심리에서 중요 특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주류의 생존은 반대와 비판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필요하면 의도적인 비난도 해야 한다. 그러나 비주류 집단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에는 취약하다.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말이다. 대안 제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안 실천을 생각하면 더더욱 취약한 것이 비주류의 구조적 특성이다.

주류는 현재진행형으로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생각한다. 인류 사회에서 어떤 주류에든 늘 문제점이 있었다. 인간 존재와 그로 구성된 사회 자체가 원죄의 부패성 때문에 한계와 모순을 안고 있어서다. 리더십은 이런 현실 상황까지 끌어안고 걸어가는 것이다. 주류가 끊임없이 ’합리적이고 원만한 대안’을 찾는 게 그래서다. 주류에게 현실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오늘 실행해야 하는 현안이다. 정치를 보라.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해도 된다.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이상론을 내세워 비난만 해도 된다. 주류는 다르다. 지금 여기에서 살림을 꾸려가야 하니 말이다.

주류 비주류 논의에서 결정적인 점은 명분이다. 일반적으로는 대의명분이요, 기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다.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서 드러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약 이후 시대의 교회 역사에서 계속되는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정통성이다. 정통신학이라는 말이 이런 맥락이다. 일반 정치든 교계 정치든 정치란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어서 대의명분이나 정통신학이라는 게 무슨 추상적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인식이 분명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엄청 커진다.

명분의 현실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현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인식 그리고 전개될 미래에 대한 명확한 전망과 의지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로 보면 어느 교단이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면서 반드시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촌 전체가 시야에 들어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상황은 이미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것이 거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구른다. 자기 집단이 연관된 큰 틀의 미래를 바라보고 구상하고 헌신하지 않는 집단을 주류라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초점을 좁혀서 한 번 더 강조하자. 소집단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주류라 할 수 있고 거기에서 미래가 열린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큰 우리를 찾아야 사람답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나’라는 단어는 없다. ‘우리’가 기도문의 주어다. 주기도문은 ‘우리 기도문’이다. 누구나 나에게 이익이 될까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늘 아버지의 뜻을 묻는다.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대세인 집단이 주류다.

주류냐 비주류냐에 관하여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시각에 갇혀 있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다. 우리 사회를 포함한 한반도와 오늘의 세계가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다. 틀 자체가 바뀌고 있다. 주류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상하게 기도하며 성경 곧 하늘 아버지의 뜻에 삶을 걸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십자가의 복음에 온 삶을 드리며 신앙의 정체성이 더없이 깊어져야 한다. 기독교 교단마다 한편으로는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돼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자들이 성숙하여 거룩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통속적인 의미의 주류 비주류 의식에 시야가 갇히면 주류 집단의 리더십이 고갈되고 더 나아가 전체 집단의 역동성이 죽는다. 참된 의미의 복음적 주류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이 일어나고 지도자로 세워져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영적 부흥을 참으로 갈망해야 한다. 복음에 토대를 둔 덕스러운 주류 의식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떨치고 일어나 힘을 모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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