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번뜩, 크게 보이는 글자가 1장 9절이다.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 수 없도다”라고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생활에서 홀로 큰 탈 없이 자기 백성을 이끌어 왔던 불세출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 시대를 앞둔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중에게 조직력을 강화를 요청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 이스라엘은 머지않아 지금보다 천 배는 더 크게 확장될 것이다. 둘째, 원주민들 가나안족들 틈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셋쩨, 지금까지는 광야의 한정된 지대 안에서 생존에만 몰두했으나 오늘 이후는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신 1:7) 가야 한다.

여러 세력, 민족, 경쟁자, 강자 등과 만나면서 생존해야 하고 그러는 가운데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월한 능력자인가, 도덕과 그 덕망, 또 신앙이 바른가, 아니면 타인들의 발바닥이나 핥는 노예로 살아갈 위기가 온다면 더더욱 조직적 조직력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모세는 그의 자식 같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열두 지파별 지도자(수령)를 선정해 분할조직으로 체계화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 분리를 말하면서 정치는 정치꾼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정치를 모를수록 경건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개똥철학을 주장한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큰소리 치고 있기에 한국교회는 현재 오합지졸이다. 종교와 정치는 같다. 하나다. 종교가 만세반석 위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이 땅)에 이루어지려면 영·미국 수준의 정치역량을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 주변 많은 이들이 나라의 체제가 흔들린다 싶으니까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분명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험적이고 모험적이다. 한 번쯤 시도해볼 수도 있으나 국가 운영을 실험정치놀음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가 강한 신앙과 조직력으로 우리 사회의 허약한 부분을 치료하고, 심약한 이들을 위로하는 어른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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