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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우주의 세미한 소리를 받아 적다중풍, 남편의 암 투병 등 연이은 고난에도 시작(詩作)에 매진하는 김행숙 시인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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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호] 승인 2019.01.23  15: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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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갈망으로
사업 접고 50세에 도전

중풍으로 쓰러져서도
좋은 시 갈망하며 신앙으로 극복,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깨달아

 

   
▲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 선 김행숙 시인.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어우러질 때 아름답다

잘 대비되는 우주의 빛으로
실내악을 연주하듯이

쓴맛 단맛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미묘해지는
살아가는 일도
때로는 곰삭아져서 향기로운
익은 맛이 되기도 한다

배설물로 향수를 만든다는
향유고래처럼
나는 무엇과 어우러져서
향기로워질 것인가

- 김행숙 시 ‘나는 무엇과 더불어 향기로워질까’ 전문


상사화(相思花). 꽃이 필 땐 잎이 없고 잎이 자랄 땐 꽃이 피지 않아 서로 볼 수 없다 해서 지어진 꽃 이름. 그런데 그림에선 꽃과 잎이 함께하고 있다. 태양처럼 강렬한 주홍빛의 꽃 뒤로 짙푸른 초록색의 잎이 깊은 흑암 속에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도 둘 다 어쩜 이리 선명한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1월 16일부터 7일 동안 열린 김행숙 시인(75, 갈보리교회 권사)의 유화 개인전에서 만난 그림이다. 시를 향한 그의 몸부림은 꽃과 잎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사화와 닮았다. 시를 향한 숨바꼭질은 병과 고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 상사화를 소재로 한 ‘봄의 향연 3’


# 시, 내가 가야 할 길

“젊은 시절 사업에 파묻혀 바쁘게 살 때도 시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렸어요. 나이 오십에 잘나가던 사업을 미련 없이 접은 것도 시를 쓰기 위해서고요.”

형제들 중에도 작가와 시조시인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집안 내력인지 김 시인도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시절 그는 응당 교지 만드는 학생이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거쳐 신문기자 일을 하면서 꿈과 재능을 맘껏 펼쳤다. 결혼하면서 살림과 육아로 분주할 때도 주부백일장(1969년 여류문학인회 주최 제3회)에서 장원을 수상했고, 한국부인회 주최 육아일기 공모전에서도 장원을 수상(1970년)했다. 그럴수록 글쓰기에 대한 갈망은 커졌다. 하지만 삶의 여정은 그에게 쉽사리 그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 자녀를 기르면서 남편의 수입으로는 녹록치 않다는 판단으로 29세에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죽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시작해 가방, 지갑, 벨트 등 디자인과 샘플 작업, 영업까지 전천후로 뛰었다. 당시 서울에 3개뿐이던 백화점 모두에 물건을 납품했다. 여성이 바깥일에 나서는 것이 흔치 않던 시절에 김 시인은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20년간 사업에 임했고 자타가 인정할 만큼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시에 대한 그리움은 “더 늦으면 안 된다”고 그를 재촉했다. 50세 되던 해에 사업을 정리하고 시에 매달려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사업을 걷어치우고 글 쓰려니까 전혀 새로운 세계였어요. 나이 들어 새롭게 시를 배우고 쓰려니 젊은 사람들의 감각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죠.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조바심도 났고요. 그래도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여겼어요.”

10종 넘는 문학지를 비롯해 다방면의 책을 읽으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수없이 밤을 지새우며 시를 공부하는 모습에 남편은 “수험생이 따로 없다”며 핀잔어린 말을 하면서도 곁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힘들 때면 왜 시인의 길을 걷는가를 떠올렸다. ‘뒤늦게 문단에 들어와서도 저는 우주의 세미한 소리를 받아 적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깨어있는 영혼이고자 했습니다.’ 김행숙 시선집 <우리들의 봄날> 책머리에 쓴 글귀에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시집 <유리창 나비>(시문학사, 1998), <햇살 한 줌>(마을, 2003), <볼륨을 높일까요>(고요아침, 2009), <여기는 타관>(시학, 2011) 등의 시집을 냈다.
 

# 시를 그리워하다, 시와 하나 되다

꿈에도 그리던 시, 그렇게 만나는 듯했다. 하지만 시인이 되어 살아온 25년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59세에 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됐다. 어려서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어떤 순간에도 밝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중풍은 절망적이었다.

“낱말들이 다 날아가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어요. 말도 어눌해지고 거동도 힘들고, 죽음에 가까이 갔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오른쪽이 마비되어 글쓰기는커녕 펜을 잡는 것도 불가능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변호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예리하고 말도 생각도 빨랐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달려온 만큼 충격이 컸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절망감이 마음을 잠식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신앙을 부여잡았다. 마음이 절망과 두려움이 젖어들 때면 옷매무새를 단장하고 절뚝거리며 교회로 갔다. 그때도 기도는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림을 배운 건 굳어가는 오른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픈 몸으로도 또 열정적인 성격이 발동해 붓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3, 4시까지 전념했다. 이번 전시회는 같이 그림을 배우던 이들과 함께 마련한 것이다.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도 몸이 회복되는 데 주효했다.
병마와의 사투, 다시 시를 쓰기까지 7년이 걸렸다. 지금도 오른손으로 병마개를 따는 건 어렵지만 몸은 거의 회복됐다. 중풍 후유증으로 생각도 말도 예전 같지 않지만 김 시인은 병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만큼만”을 배웠다고 했다. 그동안 내 힘으로 살고 있다고 여겼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고난을 넘을 때마다 신앙과 삶의 성숙으로 이끄시는 것을 경험했노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제는 고난이 무섭지 않다고.
 

# 고난의 한복판에서 봄을 노래하다

김 시인은 또다시 고난의 한복판에 서있다. 50년 간 인생길을 함께해 온 남편이 암으로 투병 중이다. 혈액암 4기, 2년 전 발병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리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생활, 생의 끈이 점점 느슨해지는 남편 곁을 김 시인은 온 힘 다해 지키고 있다. 중풍으로 절망할 때 남편이 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며 지켜 주었듯이.

또다시 원치 않게 글쓰기는 중단됐다. 하지만 김 시인은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는다. 하나님이 또다시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 고난을 넘어서며 피워낸 그의 시에서는 깊은 인생의 홍수도 삭여내는 평안이 느껴진다.
겨울바람에 손을 비비며 도착한 전시회장, 눈앞에 화려한 봄꽃 작품들이 펼쳐졌다. 남편 병수발로 수개월 두문불출한 김 시인을 만나러 몰려든 지인들 사이에서 “여긴 벌써 봄이 왔네” 하며 탄성이 흘러나왔다.

봄을 좋아해 시와 그림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시인, 그에게 봄은 어떤 의미일까? “인생은 항상 봄날이지요. 누구에게나 봄날이 있어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는 자신에게 달렸지요.”

붙잡고 싶던 시는 또 저만치 멀어진 듯하지만 “어차피 죽을 때까지 쓸 것”이라는 말, 시는 이미 그와 하나가 된 것은 아닐까. 그의 상사화 그림처럼.

김 시인은 “신앙의 힘이야말로 인생을 기쁨으로 살아낼 수 있는 강한 힘”이라며 신앙시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한 차례 고난을 넘어선 그의 시는 그만큼 더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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