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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준비, 진정성 있나?”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열린대화마당서 이만열 박사 개탄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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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호] 승인 2019.01.23  15: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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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3.1운동과 한국교회의 과제’ 주제로 가진 38차 열린대화마당에서 발제에 나선 이만열 박사는 한국교회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들의 ‘진정성’을 문제 삼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들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역사학자인 이만열 박사(전 숙명여대 교수)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정신 잇기는 뒷전이고 행사에 연연한 모습을 질타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이성구, 한목협)가 1월 18일 오후 3시 연동교회에서 ‘3.1운동과 한국교회의 과제’ 주제로 가진 38차 열린대화마당에서 발제에 나선 이만열 박사(전 숙명여대 교수)는 이같이 지적했다.

이 박사는 한국교회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 속에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을 우려했다. 이 박사는 그 예로 한국교회는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33인 중 가장 많은 숫자인 16명이 기독교인 것을 자랑만 할 뿐 1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을 조명한 책 한 권 없는 현실이라면서 “3.1운동 100주년인 오늘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16인의 이야기를 한 권 책으로 묶는 작업을 위해 연구와 책 발간에 2천만 원의 예산을 세우고 의미 재고를 위해 해당 인사들이 속했던 교회들에 협력을 구했지만 한 곳도 응답이 없었다면서 “이게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 이만열 박사

이만열 박사는 또 3.1운동 당시 숫자적으로는 기독교의 참여가 많았지만 “분권적이며 민주주의적 조직으로 단시간에 자금 모금이 어려웠고 모금 과정에서 운동계획이 사전에 발각될 우려” 등으로 재정 마련이 어려워 중앙집권적 구조로 모금 관리가 용이했던 천도교에 5천원을 빌린 기록이 남아있다면서 그 내역을 상세히 밝히고 “지금이라도 가치 환산해서 천도교에 갚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제에 이어 가진 열린대화마당에서도 3.1운동 100주년을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패널로 연합기관의 수장들을 초청했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이성희 목사를 제외하고 한교연, 한교총에서는 불참 한기총에서는 대표회장 대신 대리 인사를 보낸 것이다.
패널로 참석한 윤경로 교수(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억기념분과위원장)는 “100주년을 맞는 3.1절이 코앞인데 무얼 듣겠다고 불렀느냐”면서 “제대로 준비하려면 적어도 1년 전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 무얼 할지 고민했어야 한다”고 말해 한국교회의 3.1운동 100주년 맞이 자세를 질책했다.    

한편 이만열 박사는 이날 ‘3.1운동과 기독교’ 제목의 발제에서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당시 한국 기독교의 역할을 살폈다.

이 박사는 3.1운동이 우리 민족만을 위한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독립선언서에 보면 당시 3.1운동은 우리만의 민족주의적인 평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 평화까지 강조한 평화정신을 담고 있다”면서 “우리의 적대국이었던 일본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공존과 호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시 피압박 상태에 있던 우리 민족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독립 방법이 기독교적 성격을 지닌 비폭력성이었던 것을 지적하면서 “이는 평화애호로, 전략적으로도 많은 사람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운동방법의 비폭력성과 관련, 그것이 현실적으로나 도덕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고 짚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의 참여에 대해서는 “주동 세력면에서 25~38%, 체포·투옥 면에서 17~22%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기독교인의 운동량은 대략 20~30%로 계량화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당시 전체 한국 인구의 1.5% 내외를 차지한 기독교로서는 놀라운 결과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참여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일제의 박해도 다른 종교에 비해 컸다는 것이다. 제암리교회당에서는 비신자를 포함해 한꺼번에 29명이 희생됐고, 1919년 3.1운동으로 한 달이나 늦게(10월 4일 개회) 열린 장로교 제8회 총회에서는 사살·타살 52명(각 노회 보고), 체포된 신자가 3,804명이나 되었다면서 “당시 총회에 제출한 노회의 보고는 ‘대한(조선) 독립운동’ 혹은 ‘독립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독교가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유에 대해서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민족 사랑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동일시하면서 민족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고민했다”면서 그 예로 3.1운동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는 ‘독립단 통고문’을 뿌렸는데 내용에는 △매일 3시 기도 △주일 금식 △매일 성경 읽기 등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요일별로 안내된 성경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다른 민족에게 침략 받아 고통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과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해 현재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이 박사는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선인들을 엿보게 된다”면서 오늘에도 3.1운동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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