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조 년
한남대 명예교수

오늘 우리 예배모임에서는 남들이 보기에 아주 훌륭하게 잘 산다는 분의 고백을 들었다. ‘모태신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고 있지만, 당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지를 알 수가 없이 산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당신으로서는 불안하고 좀 깊은 안정을 잡고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까지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의 세계에서, 특히 기독교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절절하게 기도한 사람이 누구일까? 피땀을 흘리며 전 존재를 내놓고 기도한 예수를 내놓고 또 누가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였을까? 밤이 새도록 기도하였으나, 그는 아무런 응답을 받았다고 느끼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혼자의 힘으로 부족하니 제자들에게도 함께 깨어서 기도하여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렇게 믿고 따른다는 제자들은 심각한 스승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고 쿨쿨 잠만 잤다. 그때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다가 포기한 듯,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나에게 주어진 이 잔을 치워주시기를 나는 이렇게 간절히 바라지만, 당신 맘대로 하세요’ 하고는 더 이상 요청하는 기도를 마친 듯이 기록돼 있지 않던가? 그리고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거기에 매달려 죽는다. 그때도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아, 이 절망스런 외마디소리. 그러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는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도의 응답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간증집회 강사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나는 그런 간증거리가 없어서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런 간증을 들을 때 이미 그것은 거짓간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도의 응답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들어주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 그것은 벌써 장사속의 간증으로 빠진다. 그것도 회를 거듭하면서, 여기저기 초정을 받으면서 하는 간증은 점점 더 거짓이 보태지고, 더 극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각색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짓간증이다. 그 자신의 생활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모범이 되는 예수께서는 그런 간증거리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한 적이 없다. 그렇게 간증한 적도 없다. 그런데 그를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은 그와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기도와 그에 따른 응답을 왜 요구하는 것일까? 간증집회에 나선 강사들은 자신들의 그런 기도응답에 대하여 매우 감사한다. 만일 그런 응답을 받지 않았다면 감사할 것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모든 일에 고마워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은 또 무엇인가?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면 감사하고, 그런 의미로 무엇인가 응답이 있다면 고마워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감사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예수께서 이기적인 기도를 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일까?

응답을 기다리지 않는 기도, 기도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기도. 바라는 대로 되든 아니든,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응답이라는 믿음. 그렇게 하면서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는 운명을 기다리듯이 모든 것을 받는 처연한 그 자세. 그것이 믿음이면서 감사하는 삶이 아닐까? ‘모든 일’에는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짜증스럽고, 좋고 나쁘고, 풍성하고 궁핍함이 다 함께 들어 있지 않던가? 병이 난 것이나 그 병이 낫는 것도, 재산이 붙고 떨어져 나감도, 직장에 붙고 떨어짐도 다 한 가지로 ‘모든 일’이란 범주에 들어가지 않던가? 높고 낮음, 반듯하고 기울음, 성공하고 실패함, 아름답고 추함이 다 함께 이 ‘모든 일’에 속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온갖 설교에서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응답받는 기도를 하라고 닥달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것은 사이비다. 이것은 협박이요 사기다.

가만히 살피면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만큼 탁월한 훌륭한 믿음의 표시는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려면 자기 맘에 맞는 응답이 오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 엄밀히 따져서 응답이 내리는 기도는 거짓이다. 하나님을 사사로운 정에 기울어 웃기는 존재로 여기는 일이다. 기도의 혁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응답 없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도록 하는 것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나는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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