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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중재자의 자세욥기 32:1-22
구인성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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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호] 승인 2019.02.13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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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33:6-7)

 

   
▲ 구 인 성 목사
안산 샘골교회 담임

◈ 월 : 올바른 중재자의 자세 / 욥기 32:1-22

욥의 탄식을 듣고 있던 엘리후가 중재자로 자처하며 변론합니다. 여기서 올바른 중재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의와 겸손을 갖추어야 합니다(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6). 연소한 엘리후는 스스로 중재자로 나서면서 먼저 자신의 무례함과 결례에 대해 조심스레 양해를 구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숨결(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8절). 엘리후는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8)라고 했습니다. 모든 근원적인 지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중재자는 성령님을 통해 지혜를 얻고 사모해야 합니다. 셋째, 아첨을 버려야 합니다(21-22절). 엘리후는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아첨)을 돌리지 아니하리니”(21)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하는 아첨은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리기에 참 중재자는 진리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화평을 이루는 중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 기도 :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함으로 평화의 중재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화 :  소통하는 대화  / 욥기 33:1-7

인간관계에 있어 대화는 중요합니다. 대화가 없으면 물 없는 사막과 같습니다. 엘리후가 소통하는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통의 세 가지 원칙을 보게 됩니다. 첫째,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1). 대화는 일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자세를 취해야 소통의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3). 소통하는 대화의 기본은 말의 진실성입니다. 만약에 대화에서 진실이 없다면 사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대화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며 오직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셋째, 대등한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6-7). 대화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인격을 대등하게 존중하며 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무시 당한다고 느끼면 소통하는 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 기도 :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며 진실하게 대화하게 하소서. 아멘.


◈ 수 : 공의로우신 하나님 / 욥기 34:21-30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복된 것입니다. 그분은 의인의 길을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을 멸망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합니다. 첫째, 사람의 모든 행위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21).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움직이는 행동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롭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아십니다(시 139:1-12).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 하나 숨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23-25).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증인이나 사건을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사하는 시간이나 증인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오판이나 편파적으로 재판하지 아니하십니다.
▶ 기도 : 우리를 정확히 아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 목 : 기도 응답을 받는 삶 / 욥기 35:9-16
오늘 말씀은 기도 응답을 받는 삶의 지혜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며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10). 우리는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시 50:15). 그분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12).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헛된 것을 버려야 합니다.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13). 하나님은 정욕과 욕심과 외식의 헛된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 기도 : 교만과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진정 찾는 기도를 하게 하소서. 아멘.


◈ 금 : 하나님의 일하심의 모습 / 욥기 36:1-16
본문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악인은 심판하십니다. ‘악인을 살려 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6). 하나님은 악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 짓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악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의인은 존귀하게 하십니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7). 하나님의 관심은 죄를 해결한 성도입니다. 정결케 된 의인을 눈여겨보십니다. 눈동자처럼 보호하십니다. 영원한 은혜와 존귀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셋째, 순종하는 자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12). 하나님은 악인이 망함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고 그들이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형통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누구든 순종하면 은혜를 베풀고 사랑하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그 누구든 은혜와 사랑과 형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 기도 :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통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 토 : 엘리후가 증거하는 말씀 / 욥기 37:1-13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통해 음성을 들려주시며 일하심을 증거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1-3). 엘리후는 천둥소리와 번개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합니다. 그는 천둥소리를 들었을 때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천둥 소리를 들으면서, 번갯불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천둥소리와 번갯불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주관자가 되심을 알라(5-10).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은 눈과 한파 같은 기상 변화와 모든 우주 운영이 자연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엘리후는 눈과 비 그리고 추위 등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발생함을 증거합니다. 셋째,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라(11-13). 엘리후는 구름의 예를 들면서 자연현상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레와 비를 내린 사건(삼상 12:18)과 엘리야의 기도로 축복의 비를 내린 사건을 우리는 봅니다. 엘리후는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징계와 긍휼이 이루어짐을 증거합니다(13).
▶ 기도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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