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광교회 31년, 이월량 목사 올해 45년 사역 은퇴 앞둔 소회

군산, 안양에 이어 세 번째 서대문에
개척해서 오늘날까지 45년 목회

새벽예배 후 3시간 정도 독서
-심리학, 철학 서적 읽으며 폭 확대

정부 지원받아 일하지 말고
교회 노인 지원 사역 ‘당연히’ 여기고
담당했으면

 

서울 서대문역 인근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연립이나 단독주택들 대신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섰다. 서대문역 2번 출구에서 세광교회(이월량 목사) 찾아가는 길은 동부아파트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세광교회 이월량 목사가 2019년을 맞는 새해는 좀 남달랐다. 목회에 첫발을 대딛게 된 1974년 이후 앞만 보고 온 걸음이 올해로 정년 70세를 맞기 때문이다.
 

●● 개척의 시간들

세광교회가 이 지역 일대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8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이다. 개척자인 이월량 목사는 개척을 세 번 한다는 서원대로, 군산과 안양에 이어 이곳에서 세 번째 개척,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먹기가 사실 쉽지 않았다. 두 번째 개척을 끝내고 2년간 경험도 쌓을 겸 부교역자 사역을 했다. 그리고 3년 간 서대문 지역에 살 집을 마련하고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독립문공원 뒤로 나있는 안산을 매일같이 다녔다. 목회를 위해 기도했지만 고민이 됐다.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서도 많이 고민됐다. 하나님께 서원한 목회, 세 번의 개척을 하겠다는 열망은 변함이 없었다.

첫 번째 군산에서 개척할 때 건물을 헌납해주신 장인 장모가 딸을 보러 방문하셨다가 집에서 찻상을 놓고 드린 예배가 서대문 지역에서 목회하게 된 출발이 됐다. 셋집이었지만 비교적 큰 그 집에서 나중에는 수십 명이 함께 예배드렸다. 부흥이 되고 있는 시점, 기도 받으러 기도원 다닌다던 신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어려움에 부딪혔다. 예배드리던 전셋집을 빼야 하는 상황, 우선 전세금으로 교회 건물 15평을 마련했다. 그러고 나니 거처할 집이 없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목사는 침낭에서 자고, 아내와 아이들은 처마 밑에서 몇 개월을 지내야 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어려웠던 때인 것 같아요. 사택 없이 산 시간이 4-5개월 됐던 것 같습니다. 그때 대책 없이 결혼한 걸 후회 많이 했어요. 아내에게는 그 부분에서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 서대문 세광교회, 31년

세광교회는 개척 때부터 매일 새벽예배 뿐 아니라 매일 밤 9시에 기도회를 갖고 있는 교회로 유명하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신자들은 이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교회에 모여 자신을 위해, 가정, 교회,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설교를 통해 은혜 받고 찬송하는 일을 1년 365일 계속하고 있다.

매일 밤 9시 기도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됐다. 매일 하루를 마치면서 교회에 와서 공동체성을 갖고 보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함께 예배하고 믿음 생활에 진력할 수 있는 마음을 모은다는 것, 그것도 어쩌다 하루가 아니라 매일을 그렇게 단련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통해 목회자도, 성도들도 신앙의 내공이 쌓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목사가 해외 선교지나 다른 활동 때문에 교회 자리를 비우면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안수 받은 황명순 사모가 인도하거나 성도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황명순 사모는 목사안수 받고 협력목사로 함께 사역하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이 목사에게는 ‘동역자’로서 큰 힘이 되었다.

“사모가 되겠다며 제 사역에 힘이 되어준 덕에 제가 이렇게라도 사역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사역에서 벗어났거나 도망갔을지 모른다”고 이 목사는 엄살 아닌 엄살을 한다. 그만큼 황명순 목사는 아내이자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동반자로서 이 목사에게, 그리고 세광교회에서 든든한 역할을 해줬다.

매주 수요일마다 세광교회는 전도팀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전도하기를 꾸준히 하는데, 신자들을 독려하며 전도의 사명을 이끌어주는 것에도 황명순 목사는 열심이다.
 

 

●● 쉬워진 설교

이월량 목사의 설교에 관해 주변의 후배들은 어렵지 않고 성경 핵심을 정확히 짚으면서 영성 속에서 전달한다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뻔한 설교나 신학적인 설교가 아니라 신자들의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쏟아 붓기 위해 이 목사는 다른 목회자들처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목사는 새벽예배 후에 가능한 한 9시까지 독서를 한다. 기독교 관계 서적도 보지만 심리학이나 철학 등 일반서적도  많이 본다. 신자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며, 생활 속에 필요로 제공되는 책들을 찾아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목사의 설교는 기독교의 언어와 카테고리에 제한돼 있지 않고 좀 더 폭넓은 부분으로 접근하여 청중들의 수용성과 이해도를 높인다.

수십 년의 목회 사역이니 설교는 좀 쉬워지지 않았을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더 어렵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단다. 예전에 전했던 본문이더라도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으니 다르게 선포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을 때를 종종 만난단다.

그래서 그는 ‘은퇴’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자신의 한계를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 목회자의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청원이 교단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는 반대다. ‘여러 한계와 기억력 감소, 스피드 약화’ 등을 목도할 때 노년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교 준비에 어려움은 있지만 전달할 때는 예전보다 훨씬 쉽게 전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나이 예순 정도 되니까 중요한 것은 전하는 설교를 신자들이 제대로 알아듣고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고 체득해나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을 어찌하든지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이월량 목사의 성격이 그렇다. 성경 말씀처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깊은 마음이 참 마음임을 안다. 어느 날 문득 일흔이 넘은 신자들을 보면서 ‘저 어르신들에게 조금이지만 용돈을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매달 용돈을 드린다.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커버해주지 못하는 노인들을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논문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지금 시대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려 사회복지나 여러 곳에서 노력하는데, 여기에 교회가 합류해서야 되겠냐고 이 목사는 말한다. 큰 교회나 작은교회들이 정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껏 노인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다.

“그렇게만 되면 정부의 짐도 덜어주게 되고, 교회도 어느 부분에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사회 속에서도 환영을 받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광교회 역시도 지역의 동사무소를 통해 어려운 이들을 돕고 협력하는 일들을 힘 닿는 데까지 하지만 그런 것을 드러내놓고 하는 것은 딱 질색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자랑삼아 내세우는 것은 이 목사 성격에도 맞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에도 배치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 국내외 10개 교회를 후원하는 일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다.

가을이면 은퇴하는 이 목사에게는 마무리 잘 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뭘 요구하는 것도 사치인 것 같다”고 한다. 10년 전 가슴에 통증이 와서 심장에 스텐트를 박은 이후 이 목사는 미래가 아닌 ‘오늘 이 순간’이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이 목사는 신자들의 모습이 점점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그 공동체 속에서 이 목사는 오늘도 ‘오직 성령으로 하자’는 2019년 세광교회 표어를 품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루 숨 쉬는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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