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면서 다닌 교회에 8년을 출석했다. 매주일 오전 오후 예배의 설교를 들었으니, 한 설교자의 설교를 적어도 800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설교가 있다. 성탄절 설교였는데, 그 중에서도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의로운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구절을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설교자는 그 상황에서 요셉이 가만히 파혼하면 당연히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할 테고 결국 마리아의 임신 사실이 밝혀져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으로 몰려 큰 위험에 처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 말없이 사라지는 쪽을 선택했고, 사람들이 요셉을 사고치고 도망간 나쁜 놈으로 치부하고 마리아를 불쌍한 피해자로 여기게 되기를 바랐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여인을 지키고자 했다는 추측이었다. 약혼녀의 명예와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명예와 삶의 터전을 과감히 포기하는 요셉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멋진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그렇게 쿨하게 마리아 곁을 떠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꿈에 천사를 보내어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 전하신다. 이제 요셉은 마리아와 한배에 오른다. 처녀 잉태의 신비와 낭패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를, 동일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순교하듯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떠나가는 것도 멋졌겠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인 현실을 삶의 자리로 인정하고 살아내면서 경제적 정서적 신앙적으로 아내를 뒷받침하는 것은 더더욱 멋진 일이었고, 무엇보다 그에게 주어진 길이었다. 그는 그 길을 꿋꿋하게 감당했다. 이후 아이의 목숨을 지키고자 몇 년 동안 이어진 이집트 난민 생활은 그 길이 초래한 눈에 보이는 한 가지 결과일 뿐이었다.

인류 구원의 통로로 최전선에서 섰던 마리아 정도의 헌신과 믿음의 소유자라면, 그런 여인의 뒷배가 되어준 요셉 정도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엄청난 것으로 갚아주시리라 기대할 법하다. 그러나 능히 기대함직한 물질적 정서적 보상은 없었다. 마리아가 겪어야 했던 크나큰 고통과 아픔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요셉은 오래 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고 섬긴 이에게 그 정도 대우가 최선입니까?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온다.

600쪽이 넘는 전기 <칼뱅>을 읽었다. 인간적 한계와 시대적 한계 안에서도 타향 땅 제네바에서 사회와 교회를 세우고 난민들을 섬기며 자기 자리에서 꿋꿋이 제몫을 감당한 사람이 거기 있었다. 그것도 놀라운 에너지와 끈기, 한결같은 열정으로 감당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국민윤리 시간에 배웠던 칼뱅 예정론에 대한 설명을 떠올렸다.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것이 예정된 자로 확인받는 길이었기에 예정론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했던가. 그 설명이 과연 옳은지 논할 생각은 없다. 나의 관심은 <칼뱅>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선택을 확인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소개하는 데 있다.

“라틴어 및 프랑스어판 <기독교 강요>, 성경 주석, 논쟁 저작은 그 뜻을 측량할 수는 없지만 신앙 때문에 고난당하는 이들을 향한 그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실하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함께 기여했다. 그의 비전은 우상숭배로 더럽혀지지 않은 이들에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자기희생과 자기부인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비전이었다. 칼뱅은 십자가 아래 사는 삶에 목적을 부여했다. 핍박은 선택의 표지였고, 하나님이 신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강력한 암시였다”(538쪽).

선택의 표지는 핍박을 감수하는 신앙이란다. 성공과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에 핍박과 난민생활, 심지어 순교까지 감수하는 모습이 선택의 표지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붙드시는 특별한 은혜 없이 어떻게 그런 인내가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요셉의 삶이 보여준 은혜였고, 칼뱅의 인생과 가르침이 보여준 은혜였고, 오늘날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은혜이다. 내게도 그런 은혜를 주십사고 차마 구하지 못하겠으나, 지향해야 할 방향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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