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_21

요한복음 저자가 이레니우스, 폴리갑, 그리고 역사가 유세비우스 자료에 그 흔적이 얼마간 남아 있다. 저자는 “요한이라고 하자!”고 합의를 하면 좋겠다. 요한복음 저자 찾기에 앞서 우리는 이사야서가 1권이냐? 1, 2, 3권이냐를 놓고 시비했는데 그보다는 한 사람 이사야일 경우, 그는 그의 활동기가 100여년이 전부였을 터인데 이사야 39장까지, 그리고 40장에서 55장까지, 또 56장 이후 마지막장까지 예언자들의 활동배경과 주변 상황이 바뀐다. 이사야 66장 전체의 기록배경은 200년 혹은 300년 정도의 기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계몽철학기 수업을 철저하게 한 계층에서는 3명의 기록자를 말하고 있다.

3명의 기록자를 일단 수용할 경우 바벨론 포로기 직전으로 그 활동기를 말할 수 있는 이사야, 그리고 자기 이름을 포기해버리고 이사야 가슴 속에 자기 이름을 묻어버린 2명의 선지자는 누구, 또 누구인가?

아마, 그들은 천사들로 호칭해도 좋겠다. 인간 역사는 “이름”인데 자기 이름을 자기가 흠모하는 “이사야 속에 감춰버린 사람들이여!” 생각하면서 이사야의 진가를 필자는 고품격으로 본다.

요한복음서 기록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단수인지 복수인지 손에 칼을 쥔 사람들까지 합세해 찾고 있으나 아직도 못 찾는다. 그러니까 “요한이라고 하자”를 요한복음 저자로 삼자는 것이다.

장소 역시, 예루살렘 성전 멸망기에는 요르단 계곡 팔레스타인 지역, AD 90년 얌니아회의 전후로 에베소 정착을 했을 것이다. 에베소에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요한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다.

자, 그럼 본문 속으로 가자. 가기 전에 꼭 알아둘 것은 본문의 나열 순서에 목매지 말자는 것이다. 21개 장 전체를 각각 분리해도 요한복음의 가치 핵심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본디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21개 장 속에서 어느 한 구절만으로도 요한복음이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예수의 핵심 표현이 있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으셨다. 공자가 논어는 물론 그에 관한 책 한 줄도 쓰지 않았듯이 말이다. 석가 또한 팔만대장경 중 어느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다 그들의 영특한 제자들의 종합작품이다.

그런데 유독 성경비평가들이 요한복음을 더러 가볍게 여기고, 홀대하려드는 것을 보면 기독교 주변에는 사단의 핵심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검증이 끝난 이들의 이론도 참고하면서 아직은 검증을 유보하고 싶은 필자의 요한복음 본문이야기를 쉬엄쉬엄 해보기로 한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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