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상 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희망찬 봄이 왔다. 얼어붙은 대지에서 싹이 트고, 메마른 나뭇가지에서도 망울들이 터지고 있다. 생명의 역사는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부터 올라오는 봄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들뜬다. 그러나 봄이 왔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추운 겨울인 것 같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따뜻한 봄이 오히려 싫다고 한다. 그래서 더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끼고 우울해지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K양은 공부를 못하는 자신과 동생을 비교하며, 미래가 없다고 비난하는 엄마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녀는 엄마가 자신에게 야단치며 외면할 때마다 너무 화가 나고 참을 수 없어 여러 차례 자해했다고 하였다. 자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 이 청소년에게 봄은 올 수 있을까.

최근 청소년 자해가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자해 장면을 사진 찍고 SNS에 올리는 자해 인증 계정, 즉 ‘자해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 SNS에 ‘자해’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게시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 자해로 인해 학교 선생님과 부모들이 큰 걱정에 휩싸였다. 자해하지 말라고 무조건 야단친다고 해서 이 분위기가 잦아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2018)가 중·고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실시한 결과, ‘자해한 적이 있다’는 중학생은 4만5백여 명, 전체 학생의 9.77%에 이르렀다. 자해 경험이 있는 고등학생의 수도 3만여 명, 6.42%에 달했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와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해했어도 숨기는 경향이 있어 실제 자해 학생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 자해를 많이 하는가. ‘KBS 추적60분’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해 청소년들의 심리를 파악했다. 그 결과, 가정불화, 교우관계, 학업 등의 이유로 우울감이 극에 달하거나, 상처 입은 아이들이 자해를 통해 순간적인 해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울이는 모든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사랑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출산율 저하로 가정마다 자녀의 수가 하나 혹은 둘밖에 안 되기에 부모는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데이빗 엘킨드(David Elkind)가 말한 것처럼 부모의 ‘과잉 양육’ 현상이 아이들의 자유시간을 과외활동으로 채우게 되었고, 포스터 클라인(Foster Cline)이 말한 ‘헬리콥터 부모’처럼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었다.

부모의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자녀의 입시로 귀결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가 승리를 위해 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아이는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무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투의 대열에서 낙오된 아이들은 미래를 담보 잡히고, 인간 대접도 못 받는 수모를 당해야만 한다. 그들은 이 우울한 처지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 받고 싶어 자해하게 된다.    

필자는 내일의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들의 자해를 몇몇 일탈된 청소년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자녀들이 행복할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명문대학이나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도 자긍심을 갖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른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아이들이 지금 누려야 할 행복할 권리를 유예시켜서는 안 된다.

자해는 청소년들이 도움을 찾는 손짓이다. 자해를 경험하는 아이들을 외면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그들이 왜 자해하는지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함께 해 줄 때, 그들이 자해의 유혹에서 벗어나 따뜻한 봄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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