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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유럽을 공격하다 ⑥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사제 왕 요한_ 71
조효근/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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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호] 승인 2019.03.13  13: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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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지들, 우리는 곧 세계제국을
선포한다. 세계제국은 땅덩어리가 아니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또 세계를
뜨거운 가슴에 담은 우리들의 소원을
세계인들과 나누는 것이다.”

   
▲ 몽골 언덕에 그려진 징기스칸의 초상화

더구나, 러시아 군대는 일터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뛰쳐나온 농군들임을 알 수 있었다. 프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무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고 밭을 갈아 씨를 뿌리다가 소집되어 달려 나온 농군들이었다. 수부타이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그들의 무기는 일관되지 않았다. 창이나 칼, 철퇴나 농기구를 변형시킨 듯한 무기들을 발견하면서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부타이는 십의 십인대, 백인대장들을 소집했다. 그는 적의 실상을 알려주면서 몽골군보다 3배 정도는 더 되어 보이는 숫자에 주눅 들지 말도록 다독거렸다.

러시아 부대의 궁수들은 보병과 별도로 배치되어 있었다. 장교들은 저마다 말 타고 보병들 뒤를 지키면서 민첩하게 호령했다.

수부타이는 쉽게 공격하지 않았다. 적군을 극도로 긴장시키는 심리전의 연속이었다. 러시아 군의 모습이나 그들의 대오가 만만치 않아보였다. 수부타이는 징기스칸 군을 향해 노래를 부르도록 명령했다. 느닷없는 노랫소리에 이어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흥에 겨웠다. 러시아 군들도 덩달아 어깨가 들썩였다. 한동안 신나게 부르던 수부타이 군의 노랫소리가 뚝 그쳤다. 맑은 봄날의 정경이 십여만 명의 양쪽 군대가 피를 흘리기로 작정한 전쟁터 같지 않았다. 왜 그러지, 왜 노래와 북소리가 그쳤지. 러시아 군은 긴장했다. 몽골 군의 깃발이 올랐다. 소리 없는 깃발이었다.

깃발의 신호를 따라 몽골군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몽골군의 기마궁수들이 러시아 군 보병들이 밀집한 군진을 향해 지축이 흔들리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렸다. 순간, 양군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노려보았다. 러시아 군 장교들이 볼 때 몽골군 기마궁수들은 활을 쏠 자세가 아니었다. 왜 저러나? 러시아 장교들이 공격명령을 내릴까 하는데 이건 또 뭔가. 러시아 군 지척의 거리 가까이 징기스칸 군이 떼로 몰려오기는 했으나 어느 순간 말발굽이 땅바닥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굳어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수부타이 군은 보병들의 칼과 창이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그의 군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러시어 군 장수들이 깨달았을 때는 대처가 늦었다. 몽골 기마궁수들 화살이 날아들었다. 아이코, 몽골군 화살은 정조준이었다. 허우적거려봐야 농기구 비슷한 러시아 연합 보병들의 무기로는 방어를 할 수 없었다. 이어서 수부타이 군은 러시아 장교들을 향해 조준해 화살을 쏘았다. 몽골 말보다 훨씬 크고 늘씬한 마상에 있는 유럽식으로 단장한 러시아 군을 잽싸게 요리하는 제배 휘하의 기마병들은 어느 순간 러시아 보병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했다. 러시아군은 몽골군 화살에 죽고 부상을 당한다. 빗맞아서 주변에 떨어진 몽골 화살을 되쏘아볼 요량이었으나 러시아 활시위에 맞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자기들 주변에 쏟아지는 몽골군 화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분질렀다.

러시아 군도 화살을 쏜다. 유럽 화살의 사정거리는 몽골 화살보다 짧다. 더구나 정조준이 되지 않았는지 몽골군 주변에 화살들이 쏟아졌다. 몽골군은 러시아 화살을 되받아서 시위에 꽂아보았다. 러시아 화살의 오뉘(화살머리를 에어낸 부위)가 몽골군의 활시위에는 맞았다. 몽골군은 러시아군 화살을 재사용했다.

러시아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열이 흩어졌다. 러시아군은 몽골군의 동작에 반 박자 정도씩 늦었다. 좌우로 군진을 넓히면 위기를 잠시는 피할 수 있고 퇴로를 열 수 있을 터인데 그들은 곧바로 뒤로 군의 전열을 물렸다. 군진이 흐트러진다. 후속군과 퇴각군 사이가 융통할 수 있는 여백이 없었다. 퇴각군과 후속부대가 서로 엉켜서 퇴로가 막혀버렸다. 말을 탄 귀족들 공후들은 의장대 병사들처럼 반짝거리는 창검, 화려한 깃발을 들고 화려한 문장이 박힌 제복을 입었으며 칼과 창을 들었으니 그들이 탄 말들이 육중한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인지 귀족공후들의 군마들 움직임이 둔했다. 그런 그들은 잽싸고 매서운 몽골기병들의 밥이었다. 달리는 말을 거꾸로 타고 가면서도 명중률이 높은 몽골기병인데 이를 어찌하나.

도망질치는 러시아 귀족군마들을 사냥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귀족 군마들 중에 금색 표시가 있는 기사들은 귀족장들이다. 사전 탐사를 통해서 모두 확인을 끝낸 수부타이의 징기스칸 군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산채로 잡았다. 주요 공국들로부터 항복을 받아야 했다. 흑해변의 러시아 영주국들은 대다수가 수부타이와 제배의 연합군에 의해서 전멸이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1224년 노브고르도 연대기 기록에 의하면 러시아 연합군 10만 명의 10%만 살아서 각자의 공국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스부타이와 제배가 이끄는 몽골군의 희생은 거의 없었다. 대승이었다. 유럽의 문턱에서 그들은 크게 웃었다. 수부타이와 제배는 흑해 남동부 따스한 봄날의 목초지에 군마와 부대 전체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수부타이는 잔치를 열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잔치에는 그들이 선택한 주빈이 있었다. 패배한 영주 무스틸라프 공과 그의 두 사위였다. 그들은 초원지대의 악취미가 발동했다. 무스틸라프와 그의 사위들을 큼지막한 덕석으로 둘둘 말았다. 산 채로였다. 그들을 게르의 바닥판 밑에 쑤셔 넣었다. 수부타이와 제배는 밤새도록 그들의 전리품이랄 수 있는 포로들 셋을 산채로 덕석 삼아 바닥에 눕혀놓고 그 위에 앉아서 춤추고 노래하며 밤새워 즐겼다.

이는 징기스칸의 법이었다. 화해와 동맹 등을 요구한다. 배신하거나 먼저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징기스칸의 세계제국의 계율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징기스칸이 후레즘 제국과 통상을 맺기 원해 비무장 사절단을 보냈으나 후레즘 제국은 통상 사절단을 모조리 죽였다. 그래서 후레즘을 징벌했다.

수부타이의 흑해 연변의 러시아 공국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통상을 맺자고 보낸 사절단을 도륙해버린 바 있다. 전투장에서 상호 전사자나 부상자와는 달리 무스틸라프 공후와 그의 사위 둘은 수부타이의 군이 유럽 문턱을 넘는 전초전의 희생자로 기록되었다.

수부타이 군은 후레즘으로 귀환했다. 징기스칸이 머물고 있는 니샤푸르로 갔다. 이미 그들의 전과는 전령들에 의해 모두 보고되었다.

“대칸, 나의 아버지시여! 수부타이와 제배가 지금 유럽의 문을 열고 돌아왔나이다.”

징기스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수부타이의 집채만큼이나 큰 몸을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제배에게도 애정 어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나의 동지들, 우리는 곧 세계제국을 선포한다. 세계제국은 땅덩어리가 아니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또 세계를 뜨거운 가슴에 담은 우리들의 소원을 세계인들과 나누는 것이다.”

징기스칸 사상의 핵심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그는 혈통의 우월감이나 세력의 우월감을 늘 경멸했다. 그는 자신이 몽골 민족의 전설적 영웅인 카불 칸의 직계손이면서도 이를 신분의 표징으로 삼지 않았다. 몽골족 안에서도 니르운(흰 뼈)과 드릴루킨(검은 뼈)으로 혈통을 분류하는 전통이 있어왔으나 그는 달랐다. 물론 징기스칸 가문도 본디 몽골족 중에서 흰 뼈보다는 검은 뼈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는 결코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휘하 장졸들 중 귀한 가문의 자손이나 하층민 출신들이 어울릴 때도 그들의 신분이 아니라 사람됨에 기준을 두었다. 정직성과 약속에 대한 신뢰가 그 기준이었다.

징기스칸의 세게 제국론은 잘났다고 뽐내는 서양 중심의 기독교와 그가 따르는 기독교 스승들인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서양 기독교로부터 이단 정죄 받은 집단 소속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징기스칸의 유럽 정벌 결단에 또 하나의 생각은 십자가군 기독교의 교활한 마음 자세를 나쁘게 보았다는 점이다. 그가 배운 대로는 십자가군이 1140년 경 동방에 네스토리우스 파 왕이요 또 사제인 인물이 수십만 명의 군사를 가졌는데 십자군을 도와서 투르크 이슬람을 궤멸시키겠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져 있으나 그들은 그토록 기다리는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사제 왕 요한)을 찾아와서 원병을 요구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교활한 교황의 십자군의 겹치기 전략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들이 이단으로 취급해서 버린 네스토리우스 파 아시아 기독교에게 비굴하게 굽실거릴 생각은 애당초 없었고, 다만 유럽인들을 향해 십자군 원병을 더 보내달라는 전략적 표현으로 본 것이다.

징기스칸의 유럽 공략은 동·서 평화 특히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사회에서 배타적인 종교에 대한 혐오심이 징기스칸은 유난히 강했다. 어떤 사람들은 징기스칸이 무슨 기독교인이냐고 하지만 그는 철저한 예수의 사람임을 자부하고 있다. 단,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이기에 자기가 믿지만 다른 종교들, 부족 종교나 미신종교라고 하는 민간종교를 인류문명 성장과 발전 과정의 산물이니 특별히 억압하지는 않는다는 그의 방침 때문일 것이다.

징기스칸은 수부타이와 제배로부터 유럽인들이 매우 허술하다는 보고도 받았다.

“아니야. 그건 동의 못해. 겨우 러시아 쪽 유럽과 한 번 겨뤄보고 결론내리는 것은 빨라. 유럽은 우리들 몽골초원의 문화보다 몇 갑절 뛰어나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다만 저들이 우리의 실력과 성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게 지금까지는 우리가 유리한 점일 거야. 아마, 이번에 수부타이 군에게 한 번 크게 당했으니까 뭘 좀 배웠을 거야. 그럼, 우리는 저들이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의 군사전략을 전투 중에도 바꿀 수 있도록 미리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늘 겸손해야 하고….”

수부타이와 제배는 징기스칸 앞에서 어린아이들처럼 두 손을 모아 쥐고 경청했다. 두 장수가 밖으로 나간 뒤 사제 왕 요한은 징기스칸과 눈을 마주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 제가 부하들에게 실수하지 않았나요?”

“몇 년 더 이렇게 지내면 사부자리도 지탱이 어렵겠구려. 특히 십자군이 우리 아시아의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를 농락한 것이라고 표현한 점은 명언이오. 나도 동감입니다. 저들이 중앙아시아, 몽골 초원, 중원 대륙을 지배하는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월감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들 서양과 서양 기독교를 단단히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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