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사상”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의 “모리아 제단”에서다. 이 제단에서 잉태한 메시아는 “골고다 십자가”에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시요 인류 구원의 오직 하나님의 법칙이시다.

유럽은 1517년 종교개혁으로 큰 갈등을 빚기 시작해 1815년 프랑스 대혁명이 마무리되기까지 3백여 년을 꼬박 저주스러운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저주로 끝내지 않고 십자가 예수의 관용에 의지해 무자비한 학대와  살인 등 자기 생명을 저주하면서 고통하다가 복음의 도움으로 “관용의 법칙”을 마련했다. 철저한 예수의 십자가 학습이었다.

대한조선은 1919년 다음 해인 1920년 3.1운동 세력에 사회주의 좌파들이 뛰어들면서 남북한의 분단조짐이 시작되었고, 1945년 이후 우리는 남북분단 상황의 연속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북한 공산당 세력은 제주도 여수 순천 사건 이후 남남갈등의 무한연속을 통해서 이제는 자칫 남북한 전체가 증오와 저주로 가득한 나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지난 2017년 촛불이 대통령 탄핵까지 강행하는 결단으로 나라를 바로세울 수 있을까 했으나 오늘은 그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현 집권층은 사회주의 경향의 정책을 선호하는데, 그럼 당당하게 논리를 제시하라. 사회주의적 국가 시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국민 선동보다는 대의정치를 통한 설득력으로 민족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5천만 국민을 설득하라.

남북문제도 마찬가지다. 42% 지지로 과반수 미달의 정권이 겸허하지 못하고 떼 물이 식으로 좌충우돌 하지 말고 58%의 반대세력과도 끊임없는 인내로 대화하라.

그리고 한국교회는 단군 이래 모처럼 살만한 세상을 만났다지만 남북문제의 비극을 정부보다 한국교회가 나섰으면 한다. 상대 민간 파트너가 없다고 하지 말고, 북한 당국에게 교회가 요구하라.

북한의 굶주림과 질병 등 급한 민생문제를 한국교회가 비정치적이고 필요한 경우 비밀보장까지 약속하면서 민간운동으로 북한의 어려운 가정을 돕겠다는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보라.

그리고 교회는 여야당 정치인들의 화해와 관용의 장도 마련하고, 시민 현장에서도 화해와 용서, 그리고 “관용”이라는 은총의 자리를 마련해보라. 구약 신명기의 “도피성 제도”의 확대 운용을 통한 억울한 사람들이 보호받고, 필요 이상 증오심으로 불타오르는 탐욕과 자기과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은총의 골고다”를 일반화해 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

며칠 전 전 대통령 전두환 님의 광주 재판 전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한계를 또 한 번 느꼈다. 쉬운 것부터 하나씩 풀어가되, 다시 말하거니와 300년 유럽의 저주가 교회의 십자가의 관용법으로 치유했음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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