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어려서 어른들을 따라 매우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정성이 부족해졌고, 맘이 시들해졌다. 별로 알맹이가 없는 껍질과 형식만이 남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물론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노력할 때다. 그런데 차차 나이가 들면서 겪어보니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전혀 딴판인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 그 어른들과 함께 하던 제사에 대한 깊은 맘도 시들해졌다.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여도 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내가 처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할 때도 그랬다.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할 수만 있으면 지키려고 노력했다. 먼저 믿는 어른들이나 선배들 또는 교회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해보려 노력했다. 때에 따라 찾아오는 절기예배와 그것에 맞는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그런데 차차 내 열정이 식고, 맘이 깊은 데서부터 솟아나는 것이 식어갔다. 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믿음의 선배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별로 심각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가르치는 성경이나 교리의 말씀들을 그들 스스로가 깊이 일상생활에 옮겨서 산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절기들이 있지만, 그 절기가 품고 있는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하려고 하는가는 참 의문이다. 실제 삶과는 멀면서 절기만을 열심히 지키려는 듯한 느낌도 매우 크게 든다. 절기란 사실은 죽은 것, 실제 생명이 없는 날들, 그냥 형식으로 떨어진 날들이 되지 않았는가? 내게는 그런 날들을 지키는 것은 종교조직, 교회구성원을 결속시키는 행사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그런 절기들은 죽은 날들로 내게는 장사가 된 것들이다. 그러나 성탄이나 부활이란 말이 주는 의미 자체까지 장사지낸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진행되는 사순절이나 부활절을 지킬 맘은 없다. 그러나 곰곰이 예수의 고난의 길이 내 삶에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아주 간절하고 깊게 느끼고 싶다. 그가 죽어서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것이 내게 어떻게 느껴오는가를 경험하고 싶다. 그의 부활이 내 부활로 어떻게 전이되는가, 내가 실제로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가지고 싶다. 그래서 아주 안타깝고 힘들지만, 나에게서 떼어내어 장사지낼 것들이 무엇인지를 엄밀히 살피고 싶다.

잘 믿는다는 맘으로 이른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하지는 않았는가? 남북한이 갈라지는 시점에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다는 데 공헌하고자 했던 ‘서북청년단’에 속해 있던 기독청년들처럼 험한 일을 하는데 참여하고도 회개하는 맘이 없지는 않는가? 일제 때 동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식민통치세력에 빌붙어서 못된 짓을 하던 그 당시의 그들처럼 나도 지금 못된 세력에 부화뇌동하면서 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숨 쉬듯이 되뇌면서도 내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들이나 집단에게 쌍심지를 켜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저주를 퍼붓고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북한이나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에 대하여는 조금도 양보하거나 아량을 베풀거나 어떤 화해의 맘을 가지지 못하고 소멸되거나 싹 사라져야 할 악마들로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질과 권력과 명예에 맘을 빼앗겨 그것들이 내 손에 올 것 같은 기미가 있거나 낌새가 있을 때는 불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무섭게 달려들어 눈이 벌개 욕심을 사납게 부리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셨다고 말끝마다 외우고 소리치고는 그 많은 재산과 교인과 거대한 종교권력을 아들이나 딸이나 사위에게 아주 독한 맘과 치졸한 방법으로 물려주려하면서 입 싹 씻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거니 태연하게 지내지는 않는지? 남들이 아주 잘하는 일을 시샘하여 마치 나는 깔끔하고 깨끗한 맘과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위장하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전 존재를 드려 기도하던 그이처럼, 아버지 드디어 나를 버리십니까 하고 절망스런 소리를 내뱉던 그이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대신 설렁설렁 교양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보기에 이런 것들이 죽어서 땅에 묻히고 썩지 않으면 나에게 부활은 없을 듯이 보인다. 이런 것들을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이나 부활절 아침에만 건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내 치열한 삶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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