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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치매”를 두려워 한다
논설위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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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호] 승인 2019.04.10  13: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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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운동 전후로 한 변칙 행사들을 보라. 이미 3.1운동이나 독립군 활동 등에 “색깔이 칠해졌다”, 이를 어찌 하는가? 변형 교과서, 변칙 교과서가 장차 대한민국 사람을 기형으로 만들어낼 날이 멀지 않다. 자유가 뭔지, 인간 개개인의 표현의 값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우리는 배웠다. 십자가의 죽음이 기준이다. 십자가에 목숨을 예수처럼 던질 수 없거든 예수의 그 행위만이 진리로 열리는 것임을 믿으라.

한국교회는 이미 “영적 치매”에 걸려있는 것 아닐까? 아직은 치료약이 없다는 치매, 그 현상이 한국교회의 심장과 뇌에 자리잡은 것일까? 어느 것 하나 조작되지 않는 것이 없다. “빅 브라더”가 1984년 이후에는 우리들의 교회 현실에 먼저 온 것일까? 아이고, 무서워라. 정신을 차리자. 마지막 단계다. 회복 불능의 고비가 가까이 오고 있다.

여러분, 왜 그렇게 예수를 쉽게 믿으려 하는가요. 특히 큰 예배당 속에 파묻혀서 일정한 티켓만 확보한 채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가?

교회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여, 왜 예수께서 그렇게 서둘러서 33살에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아는가. 얼마나 급하셨으면, 얼마나 간절했으면 오직 그 길 뿐 더는 다른 길이 없기에 거기서 죽으셨을까?

한국의 교회여, 필자가 알기로는 통일신라 직전에, 복음이 서라벌에 들어왔으며, 고려왕조 후반에는 공개적으로 우리의 선조들이 복음을 믿기 시작했었다. 조선조 중기 정묘·병자호란기부터는 왕성했고, 정조대왕의 북학시대는 내놓고 예수를 말했었다. 근대시대 다산 정약용 일가의 희생도 있었다. 생각보다는 훨씬 전, 알렌의 의료선교 1884년, 언더우드·아펜젤러의 1885년보다 훨씬 전인 1천여 년 전부터 예수는 한반도인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다. 그 증인들이 우리들임을 헤아리면서 한국의 예수 자식들아, 돌이길 수 없는 절망의 아가리가 너와 나를 삼키려 하고 있으니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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