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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교회, 고난은 싫단다!
논설위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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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호] 승인 2019.04.10  13: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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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곡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 성향을 알 수 있다. 60년대 전후로는 “대각성기 무렵” 작사 작곡의 찬송가들이 매우 친숙하게 애송되었었다. 그러던 한국교회가 1973,1974년 빌리 그레이엄과 엑스포로 74 이후로는 이상야릇한 곡과 가사들이 섞이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는 십자가, 천국, 재림, 고난, 대망 등의 가사 따위의 찬송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위기로 바뀌어 감을 볼 수 있다.

원산과 평양, 1904년과 1907년의 부흥운동과는 성격 자체가 다른 여의도 70, 80년대가 한국교회를 병들게 했다. 바로 그때부터 소위 대형교회라는 것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3박자 5복 축제의 시대 맹목에 취하면 깨어날 수 없는 영적 수면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르틴 루터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십자가의 삶을 살아낸 아시스의 프랜시스의 십자가가 더 정확하다. 루터의 십자가에는 억울한 이들의 피가 묻어 있고 인간의 분노가 동참하고 있었기에 18세기 계몽 철학기에 “기독교 무신론”이 판을 쳤던 유럽교회사를 보면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오늘은 무조건 고난이다. 겟세마네, 제자 셋을 데리고 가신 예수는 그가 지고 가실 십자가가 무거워서 너희 셋이 나를 도와 깨어 있으라, 하셨을 때 그때 베드로·요한·야고보는 최후의 만찬 포도주에 취했을까, 예수의 십자가가 너무 무서웠을까, 그들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예수는 흐르는 땀이 피같이 진해지도록, 땀이 피로 변하도록 극심한 고통 중에 기도하셨다. 그리고 너무 힘드신 나머지…,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자나갔으면 좋겠나이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셨다.

울부짖으며 기도하시는데도 제자들 중, 선택된(?) 세 사람은 잠속에 빠져 있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넋이 있을 것이다. 바로 오늘 한국교회 형편이 위기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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