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_24

불트만의 말을 살펴보자. 요한복음 1:1~18절에서 앞부분,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까지를 읽는다.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래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까지가 1절에서 3절 사이의 말씀이다.

앞뒤 문맥을 볼 때, 이런 반 논리가 어디 있나. 말씀인 즉,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일 수가 있는가? 또 하나님 곁에, 또는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함께 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권세를 모조리 행사할 수 있는가? 그가 행사한 권세는 만물 창조 모두를 말하는가?

말씀이 한 일이다. 4절 이하,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여기서 “그”는 무엇인가? 말씀인가 아니면 창조 현상들인가? 말씀이라면 그것이 단수로 하나님이고 만물이면 복수가 되면서 신(神)의 성품에서 만물과 동일성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론과는 충돌한다. 그러면 4절의 도입부에 나타난 “그”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 될 것인가?

그 다음으로 이 말씀은 “생명”이고, “빛”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빛”이 “어둠”을 비추는데 그(어둠)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다시 정리하면 1절에서 5절까지가 논리성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아도 논리적 비약이고, 어떤 형식일 뿐이다. 그래서 불트만은 제단에 제사장이 제사를 올릴 때 읊조리는 전통적인 주(술)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이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제문(祭文)인데 제를 올릴 때의 출발을 선언하는 문장 같기도 하고, 마무리 또는 후렴(이는 필자 첨가)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불트만의 탁월성이 있다.

1장 1절에서 5절까지는 제사장의 제문이다. 전통적으로 민족 고유의 소원을 말하는 출발점이다. 아브람 한 가족이 갈대아를 떠나올 때 비몽사몽 또는 꿈인 듯 생시인 듯, 그러나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아브람 가정의 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작자 미상의 노래 가사이고, 천사가 들려준 노랫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1절부터 5절까지는 헬라어 양식으로 표현한 아브람, 아브라함이 되기 이전의 사람 아브람 집안의 노래였을 것이다. 이 문장(요 1:1~5)은 논리성으로 볼 때 현대 문장일 수 없다. 하나님의 언어인데 사람의 수준에서 말씀을 받고, 듣고, 기록, 암기, 전승의 과정이 진행되는 요한복음의 기록시간 현재일 것이다.

또 다시 정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기호다. 문장 구성상의 완벽을 찾기에는 난처한 부분이 있다. 인간 이성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18세기 유럽 계몽기 사상가들이 말씀(성경)을 해석하다 잘 안 되니까 미신 또는 무신앙적으로 치부했다가 유럽인들의 비극이 있었다. 요한복음 1장 1~5절까지의 모습에서, 또는 12장 27절부터 30절까지의 내용에서 도움을 받으며 1~5절 내용의 보충을 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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