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철 재 목사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명예회장

천동설과 지동설에서 보듯이 오해는 무지보다 무서운 것이다. 빌라도 법정의 최악의 오판도 무지와 오해의 결과지만 그 또한 무지와 오해의 벽을 믿음으로 넘고 보면 하나님의 지극한 구원의 사랑인 것을 깨닫고 경험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 부활신앙이다.

예수, 그분이 누구이신 줄 바로 안다면 누가 그 분을 그리스도로 영접치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문제는 무지요 오해다. 그래서 오신 분이 성령이시다. 그런데 그 성령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더 큰 문제다. 마귀는 처음부터 속이는 자요 거짓의 아비이고 보면 성령에 대한 거짓이 왜 없겠는가?

성령은 예수가 누구시며, 예수가 무엇을 하셨는지를 우리로 알게 하시고, 예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예수의 제자로 살게끔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부활은 내 영혼이 예수의 피로 속죄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존재적 변화다. 예수의 부활이 내 영혼 속에서 나의 부활로 새롭게 창조되는 사건이다. 또한 예수의 부활로 이미 완성된 그러나 아직 이 땅에 오지 않은 천국을 오늘의 삶속에서 살아내고 경험하는 종말론적 구원의 사건이다. 문제는 부활에 대한 무지와 오해다.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은 샤머니즘이다. 샤먼이 무엇인가. 무당 아닌가. 이 무당종교에 접신사상이 있다. 인간의 영혼이 잠을 자거나 죽으면 영혼이 몸밖에 나와서 양신(良神)이나 악신(惡神)에 접신되어 육체 속에 들어와 신령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무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접신사상이다. 이 접신사상이 바로 성령 받는 일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초월하여 성령 받기 위해 산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새벽기도 한다면 이는 샤머니즘의 또 하나의 음모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이 접신사상의 굿판 같은 잘못된 성령운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무당사상을 기독교 내에서 뽑아내지 못하면 기독교는 유불선 제단 위에 한자리 얻고 앉을 또 하나의 종교로 타락하고 말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샤머니즘의 정글 속에서 태어나 샤머니즘의 정글 속에서 자라고 있다. 불교도, 도교도, 유교도 모두가 이 정글 속에서 질식하고 무당화된 것이다. 이제 기독교 차례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샤머니즘의 ‘한울님’사상 또는 천제(天帝)사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샤먼이 이용할 수 있다.

성령 또한 무당의 귀신사상으로 오염될 수 있다. 예수의 피와 부활은 성령의 특별한 계시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다. 부활은 종교적 교리나 신화가 아니라 성도가 경험하고 살아내는 구원의 증거다. 부활절이 석가탄신기념일처럼 오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당사상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의타성이다. 둘째는 현세주의다. 셋째는 보수성이다. 넷째는 오락성이다. 이 네 가지 특성이 기독교를 예수의 피를 초월한 ‘하나님’교나 ‘성령님’교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샤머니즘의 간교한 음모다.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영생을 얻는(요 20:31) ‘예수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거룩한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다. 이는 인간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택정함을 입은 성도에게 주시는 성령의 계시적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왓츠(1817-1904)가 그린 ‘소망(hope)’이란 명화가 있다. 장님소녀가 지구 위에 앉아서 줄이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은 현악기를 타고 있는 그림이다. 그 위에는 멀리 작은 별 하나가 비치고 있다. 주님은 다시 오신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궁극적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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