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특집 2] 예수 그리스도 중심에 모시고 삶으로 좇아가려 몸부림하는 목회자·성도가 더 절실해지는 시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할 것’과 ‘제 십자가를 질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것대로 살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길을 부단히 따르도록 개개인이 노력해야 하고, 또 함께 그 길을 가도록 독려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땅의 ‘교회 공동체’다. 그리하여 교회 구성원인 성도 개개인이 다음과 같은 고백을 이뤄내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지경을 향해 나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 그런데 이 모습을 향해 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서 엇박자가 나온다. 노래로 치면 처음에는 한두 음절에서, 그리고 요즘에는 한 곡 전체에서 엇박자가 들린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그리스도 앞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오늘 우리 교회, 성도의 현실 모습이 어떠한지 들어보았고, 십자가의 길을 부여잡고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도 들어보았다(기사에 나오는 이름은 가명임).             

- 편집자 주

▲ 도마 의심과 예수님 / 카라바조 작품

●● 교회생활=진정한 신앙?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니다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마흔 살의 김철준 집사. 그는 고등학교 때 잠시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심 있는 아내를 만나면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다. 예배, 헌금 등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면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부분을 아내가 알아차렸고, 아내는 큰 상처를 받게 됐다. 아내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심한 갈등, 이혼의 위기가 놓여있었다. 담임목사도 이 사실을 알고 조언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에 놓이자 두 사람은 기도했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김 집사는 한탄했다.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예배 참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파트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제대로 했는데 왜 내가 이런 시험에 빠져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아내는 그토록 열심인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남편의 이런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저 난리란 말인가.’

 

김 집사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냐?’고. 그는 교회에서 배운대로 대답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나는 그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왜 내가 예수님과 같이 죽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사는 것 또한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신다기 보다는 내가 필요할 때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은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더 많다.”

교회 공동체 속에서 30대끼리의 셀 모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김 집사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 즉 자신의 실수라든가 신앙에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 등에 관해서 함께 나누며 기도를 요청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색하면서, “그런 깊은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가깝고도 먼’ 대상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그런 문제들은 자신이 극복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을 풀어나가기에는 자신의 한계도 많이 느끼고,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 신앙생활 잘 했는데, 어려운 일 닥치자…

장로로 이십여 년 동안 모범적인 역할을 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던 강준용 장로(57)는 최근 사업도 잘 되지 않고, 신앙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지만 체면 상 누구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 역시도 교회에서 강조하는 부분들을 무난히 책임을 감당하면서 모범적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교회 외적으로도 할 수 있는 한 주변의 선교사나 목회자, 어려운 이들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어떤 문제인지 모르나 사업도 잘 되는 것 같지 않아 평생 해오던 일도 그만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생각까지 했다. 자신이 평생 열심히 해온 신앙을 통해 탈진돼 있을 때는 정작 도움을 받지 못했다. 생각도 못했던 ‘무너짐’이 자신 속에 찾아오자 무서운 생각이 퍼뜩 들었고 주변에 있는 신앙인 몇몇에게 어려운 부분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줄 알았지만 되지 않는 것을 목도하면서 ‘내 열심’으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힘에 부치도록 돕고 협력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연습, 비로소 신앙이 나에게 무엇이고, 주님은 이 순간 나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내가 아닌 주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나와 주님의 관계를 더 끈끈히 해나가도록 노력하며 내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만나려고 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나
비복음은 사람의 행위(공로)에 기초-
비복음은 하나님 은혜 받기 위해
율법 기준에 따라 종교적 노력하게 하고,
이런 점에서
율법주의와  기복주의 신앙은 비슷


●● 하나님의 은혜인데, 왜 행위로 화답하려?

25여년 목회 속에서, 개혁과 갱신을 향해 가고자 한다는 성도들의 요청이 있어서 부임,  10여 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박중수 목사(62). 이런 성도들과 함께라면 복음적인 공동체를 이뤄가기가 용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성도들 역시 기존 교회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머리로는 그 길을 가고 싶은데 몸과 의식은 아직도 옛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십자가 설교를 평소에 많이 하는데, 그래서 희생이나 헌신은 크리스천과 한 몸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도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때로는 대놓고 말한단다. “잘 될 것이다,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지 목사님은 왜 매일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냐?”

성도들이라고 하면서도 이 땅에서의 성공과 행복에만 귀를 쫑긋하고, 편안하게 교회 와서 설교 은혜롭게(복 받는다) 잘 듣고 가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나 고난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닌데 성도들이 쉬운 길을 제시해달라고 얘기할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고 한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고난의 길입니다. 편안하게 가지 못합니다. 사회에 부조리가 팽배하고 정직하지 않은 것 투성이인데, 그 속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 성경의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쉬운 길이 결코 아님을 박 목사는 강조한다. 교회 와서 편안한 설교 듣고, 헌금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것을 마치 성도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박 목사는 말한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하는 설교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온전한 예배가 되도록 본인이 주님 앞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고, 드리는 헌금 역시 자신의 전부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정성껏 드려야 하며, 성도들과의 식사와 교제의 시간을 통해서는 지체들을 함께 돌보아 서로 세워나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는 게 교회의 현실. 성도들 간에 충분한 교감을 하고 서로의 형편과 안부를 묻고 아픔이 있으면 나누어 갖고, 기쁨이 있으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아니냐고 반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심으로 모든 생명은 값없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엡 2:8). 그러므로 인간이 선한 일을 하지 않아도, 어떤 공로가 없어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꾸 이런 은혜의 물줄기는 이상한 곳으로 흐르곤 한다. “주일을 안 지키면 교통사고 당합니다”,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업이 망합니다”, “새벽기도를 안 드려서 자식이 말썽인 것입니다”, “목사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천벌 받습니다”라는 말들이 성도들 귓전에서 맴도는 것은 왜일까.

복음적인 교회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교회여야 한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 성수를 못해도, 십일조 헌금을 못해도, 새벽기도를 못해도 은혜를 주신다. 은혜는 우리가 무엇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했기 때문에 받는 것은 값을 치르고 받는 것이기에 이미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알기까지 은혜를 베푸시며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행위(은혜)에 기초하나 비복음은 사람의 행위(공로)에 기초하기 때문에 비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율법의 기준에 따라 종교적 노력을 하게 만든다고, 이런 점에서 율법주의적 신앙과 기복주의 신앙은 맥을 같이 한다고 박 목사는 설명한다.

“한국교회, 성도와 목회자는 복음과 비복음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타협할 것인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사업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열심을 내어 기도한다면 이런 신앙은 기복적 신앙입니다.”

오늘도 복음의 길과 비복음의 길은 놓여 있는데, 이 선택은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달려 있으니 그 길을 잘 선택해서 가야 한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며,
주님이 이 순간 나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 자문하며 나아가야-
 “지금은 내 신앙 제대로
지켜내기도 쉽지 않은 시대”


●● 세속화 물결 너무 거세…말씀 묵상이 큰 힘

얼마 전 40여 년의 목회사역에서 은퇴한 이성주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 상태를 “자포자기 상태, 체념 상태”라고 진단했다. 나만 열심히 고난의 길로 가봤자 바뀌는 것은 없고, 나만 힘들어지는 것 같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세속화에 물들어가고 있는 이런 상태는 의사의 단순 처방전으로 고쳐지지 않고, 그렇다고 수술한다고 해서 회복되지도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성주 목사는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고 했다. 복음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고민하며 몸부림치다가도 어느새 의욕을 상실하고 시류에 휩쓸리게 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교회 공동체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힘들어도 가야 하는 길, 회복해서 가야 하는 길을 끊임없이 제시해주고, 서로 돌봐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목회자도 성도도 그런 열망이 없고, 그런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박중수 목사가 말한 것처럼 이성주 목사 역시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율법적인 종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율법은 도구나 수단인데, 진리나 구원으로 가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믿음의 중심으로 삼고 신앙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명’으로의 신앙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채워주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사회 변화가 급속화 되는 속에서 교회 역시도 휩쓸리는 경향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내 신앙을 제대로 지켜내기가 쉽지 않는 시대임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입니다.”

이성주 목사는 자신의 평생 목회와 신앙 속에서 기본은 <매일성경>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성경공부에 그치지 말고 말씀이 오롯이 나를 인도하여 하루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고…. 내 열심, 노력, 기적, 능력이 아니고 오직 주님이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오늘부터라도 살아내려 몸부림쳐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그러면서 이성주 목사는 목회자들을 향해 말한다. “말씀을 대할 때 설교에 필요한 무엇인가에 골몰하지 말고 말씀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 교회에서 왜 권세를 부리나

60 문턱에서 목회의 길을 힘차게 가고 있는 민수혁 목사는 성도 개개인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과 함께 교회 공동체도 제도 속에서 혼탁해져가는 부분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을 제시했다.

우선 한국교회가 진정한 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는 호칭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을 마치 무슨 계급처럼 여기는 풍토가 돼버렸으니 이제 그것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아니냐고. ‘형제, 자매’라는 교회 식구들끼리의 호칭이 대부분 사라진 자리에 ‘권세’를 부리고자 하는 직분자들이 넘쳐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임직을 함부로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첫 단추는 예수님의 은총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새 생명을 얻었음을 고백하고 선언하는 ‘세례’의 과정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들마다 세례가 너무 형식적으로 흘러 ‘겉도는 신자’, ‘날넘는 신자’들을 배출하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더 나아가 직분자들이 섬김의 도를 다하면서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길을 향해 가고자 부단히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설렁설렁 하면서 오히려 올곧게 하려는 목회자들의 길을 방해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회자들 문제도 짚었했다. ‘우리 목사님 설교는 잘해’라는 소리는 설교한대로 살아내려는 치열한 싸움이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십자가는 예수님이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하고 죽으신 곳인데, 목회자들 현장은 어떤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감내하며 죽음의 길을 택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 아닌가 라며 민수혁 목사는 목회자들 먼저 ‘십자가’와 한 몸을 이루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이지 예수의 옷, 말,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모두 기독교는 아닙니다. 내가 지금 모양만 기독교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예수의 생명에 붙어서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외에 여러 명과 통화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이 싫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생명 본질에 대해 고민하거나 중심에 두지 않고 사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심각한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누구의 탓을 하거나 문제점을 찾는 때는 아닌 것 같다. 이미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된 상태이니, 지금은 문제를 깨달은 자들이 ‘돌이켜’ 십자가의 길로 과감히 발을 내딛어야 하는 때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2019년 부활절, 환희의 역사지만 그 길은 ‘고난’과 ‘죽음’이 없었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음을 직시하고, 주님나라 갈 때까지 부단히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다. 주님이 내 안에 불편함 없이 거하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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