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교회 고등부 교사다. 고1 남학생들을 맡고 있다. 미션스쿨(B고교)에 다니는 학생(L)의 입에서 채플 이야기가 나왔다. 반 전체가 앞에 나가 찬양을 했는데, 앉아있는 학생들이 박수를 막 쳤다고 했다. 감동과 공감의 박수가 아니라, 듣기 싫은 소리가 안 들리게 하려는 소음전략이란다. L은 다들 엎드려 자는 채플 시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무짝에 소용없다고 했다.

가르침을 줄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린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 기회를 타서 대충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첫째, 거기 학생들은 기독교신자가 교회 다니듯 말씀을 배우고 예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진학과 장래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를 선택했다. 그런 ‘불순한’ 동기로 미션스쿨에 간 학생들이 채플 시간에 성심성의껏 참석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님을 전하겠다는 게 미션스쿨의 취지다. 학생들의 심드렁한, 심지어 적대적 반응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으레 그럴 줄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지금 신자들도 대개 나름의 불순한 동기로 교회에 다니다 기독교에 입문했다. 신자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대개 부모 등쌀에 떠밀려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가. 연애하고 싶어서 교회에 나간 이는 또 얼마나 많았나. 한국 기독교 초기의 “쌀 교인”은 어떤가. 배고프던 시절, 밥을 얻어먹기 위해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불순한’ 동기로 교회생활을 시작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어느새 ‘참 교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너무나 겸손하셔서 그런 불순한 동기로 나오는 자들도 내치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내신다.

셋째, 나는 미션스쿨을 통해 신자가 된 이들을 개인적으로 안다. 20년 전이라고 학교 채플이 은혜로운 시간은 아니었을 터. 그런 환경과 분위기에서 과연 의미 있는 결실이 나올까 싶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물론 그 비율은 내가 알 수 없고, 좀 더 효율적인 접근 방법이 없는지 물을 수 있겠고 학교 측과 교목 등 관계자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겠다. 그러나 접근 방법을 고민하는 것과 자괴감에 빠져 제풀에 무너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넷째, 미국의 소설가이자 목사인 프레드릭 비크너가 목사로 처음 일한 곳도 명문고였다. 그는 기독교에 냉소적인 학생들을 상대로 설교해야 했다. 그 채플 시간이 복음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학생들이 들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갖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게 할지 고민하며 설교를 준비했다. 바로 다음 단락이 어떻게 펼쳐질지 짐작할 수 없는,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 비크너의 설교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다섯째, 미션스쿨에는 비크너에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신자를 못 믿게 만들고 기독교에 거부감만 주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우리 반의 다른 학생은 그런 이들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할 때, 괜히 채플이니 뭐니 설레발치지 말고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럼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과 거부감만은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였다. 정당한 의문이었다. 그럴 위험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원래 ‘보화가 담긴 질그릇’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아니던가. 결국은 정도의 문제겠다. 일단 B고교 교목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의의 교목이라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른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쉽게 좌절하고 실망하고 주눅 드는 연약한 존재. 경험이 더해진 덕분에 조금 더 감출 수 있을 뿐, 본질은 그리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격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여섯째, 이런 상황에서 L의 역할이 있음을 지적했다. 말하자면 사람의 영혼을 놓고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너는 복음 편의 레지스탕스로 가 있는 셈이다. 졸다가도 정신이 날 때마다 틈틈이, 교목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 네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 중에 그것도 있지 않을까? 뭐가 더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겠지.

이야기를 마치자 학생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는데, 잘못 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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