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그 주변에 지체부자유한 이들을 늘 가까이하시는 유랑전도자이셨다. 어느 날 앗시시의 프란시스처럼, 리용의 피터 왈도처럼 그렇게 예수는 거리를 거니시다가 배고프고 병든 자, 특히 눈멀고 지체까지 부자유한 사람에게는 그 모습들이 안타까워서 함께 눈물 흘리시기도 하고 탄식하셨다. 저들을 불러라 저들 그냥 내버려 두면 가다가 기진하여 쓰러진다. 오병이어 방식도 서슴지 않으신 예수님을 오늘 우리는 바라본다.

아직도 우리들 주변에는 응달이 많이 있다. 주거환경이 불편하고 다 늙은 몸 젊은 날의 10%의 힘도 없는 인생을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래도 대충 요기를 마치고 잠들면 내일 아침 태양이 나를 반겨주실까…?

독자들과 통화하면서 가끔씩 산간어촌, 또는 곤궁한 어느 외진 곳 목회자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에서 그들 목장 주변의 처지를 대충 헤아릴 때가 있다.

어느 원로목회자는 정년이 되어 물러나고 새 목회자를 모셨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갈 곳이 없어서 한쪽 빈방에 몸을 의지하고 당분간이기를 바라면서 눌러있다고 한다. 당장 달려가서 그 형편에 위로를 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하는가? 그래도 현실이다. 임지가 없어서 다른 임시직으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휴직중인 목회자, 우리 사회 실직·실업자를 생각하면서 어느 날 기도하다가 힘이 나면 유랑의 길을 나서보면 어떨지.

루터의 관대한 아량과 그들의 순수한 신앙으로 8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 천 수 만 명의 피터 왈도의 제자들이 알프스 계곡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왈도의 전성기 13세기 초에는 유럽이 들썩들썩했었다. 왈도의 뒤를 이어 앗시시의 프란시스가 순결한 몸짓으로 유럽 종교개혁을 출발시킬 때의 탁발과 거리 전도단이 21세기 오늘 우리들의 현장에서도 보고 싶은 모습들이기는 하다.

둘이 만나서 예배를 이루면 그곳이 교회다. 교회의 준비된 몸짓으로 오늘의 한국교회는 왕성하고 맹렬한 전도자들, 그 가슴이 뜨겁고 눈길이 사랑스러운 전도자와 목회자들이 더 만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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