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11

▲ 윤형식 목사
동인교회 담임

교회의 가장 큰 절기는 부활절(復活節)이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 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을 핵심 교리(敎理)로 가르치는 것은 반지성적(反知性的)인 소리 같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교회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믿고 모여 경배하고 찬양하는 공동체이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었고, 그 후부터 교회는 지금까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다.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도 초대교회로부터 존재해 왔다. 이들에 의해 착각설(錯覺說), 기절설(奇節說), 도적설(盜賊說), 환상설(幻想說) 등이 유포되기도 했지만, 교회는 부활을 반대하는 어떠한 논증도 거부했다. 도리어 예수님의 부활을 더욱 굳게 믿고, 경배하고, 증언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은 교회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왜 부활에 대해 그렇게 강조해야 하는가? 첫째, 부활을 믿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사건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릴 의롭다하시는 사건이다(롬 4:25). 또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죄 사함마저 의미가 없게 된다(고전 15:17).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자연적인 인간의 죽음이다. 반면 부활은 초자연적인 사건인데, 이 초자연적 사건을 믿을 때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능력이 우리에게 성취된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거짓 증인에 불과하다. 도리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구원을 받게 된다(롬10:9).

둘째, 부활의 의미는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사도보다 더 수고하는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만난 사람들의 한결 같은 공통점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산다(롬 14:7,8).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즐거운 일을 허락하시는 근거가 부활이다(히 13:20,21). 부활은 새로운 사람의 시작이다(롬 6:4,5).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예표이기 때문에 재림의 소망을 갖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예표이기에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요 11:25,2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갖도록 한다. 예수님께서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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